새로운 시대, 방법을 생각하다
대학생은 기성세대의 고난과 새로운 시대의 불안정 사이라는 시대적 경계선 위에 존재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혁명적 기술이 거대한 변수가 되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한다. 이전 세대는 고생이 많았고, 현세대는 고민이 많다. 육체적 어려움이 정신적 고통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시대 배경에 AI는 기존 노동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있다. 노력하면 보상이 온다는 명제가 먹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선을 파괴하는 궁극적 파괴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격변을 마주하며 성인의 삶을 시작하는 대학생들은 더 혼란하다.
대학생 중 지방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세대 경계선 말고도 지역 경계선에도 존재한다. 지역의 차이는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누릴 수 있는 문화, 가질 기회 모두에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세대, 지역에 더해 디지털 지식 격차라는 삼중의 경계선 위에 지방 대학생이 존재한다. 미래 직업을 대체한다는 AI 도구들이 서울의 대형 워크숍 등에서 먼저 논의되는 것을 보며 정보 접근성의 격차와 불안감을 절감한다. 기술이 불러온 불확실한 궤적(Life’s)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빛(Lights)은 전통적 성공의 관념 대신 AI와 함께 걷는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현재 대학생 부모 세대나 그 위 세대의 삶의 궤적은 직선과 같다. 그냥 직선이 아니라 고난의 직선이다. 물리적인 노동의 가치가 보장되었던 정직한 궤적이다. 시간과 노력, 청춘을 갈아 넣으면 후에 보상이 찾아온다는 신화는 사회를 부유하고 부강하게 만들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시대 모두가 공유하는 믿음이었고, 고생의 총량은 가계의 재산으로 명료하게 치환되었다. 공장의 기계 소리, 새벽닭이 울기 전 이미 일터에 나와 있는 사람들,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장의 풍경 등은 육체적 피로와 땀으로 상징되는 고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노동은 물질을 다루는 노동으로 사람과 사람이 꼭 만나야 하는 성격의 일이었다. AI가 있었다 하더라도 물리적 실체가 없다면 대체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혹은 AI 시대 이전에 이미 정년이 보장되었던 안정적 산업 환경이었다. 기성세대의 빛(Lights)은 오늘보다 좋은 삶을 넘어 자식의 안정적인 미래까지 닿아 있었다. 저 멀리 있는 소실점을 향해 오늘 뚜벅뚜벅 걸어가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였고 그렇게 인식되었다. 디지털 기계가 아닌 물리적 기계와의 씨름에서 오는 성취감이 희망의 동력이었다. 그들의 믿음과 궤적은 폭풍 속에도 변하지 않는 북극성과 같았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궤적은 이와 다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겪었던 사회의 만연한 무한 경쟁은 옆의 친구들과 계속 싸우고 줄 서게 만들었다. 이제 맹목적 무한 경쟁에 AI가 만들어 낸 모호한 경쟁이 더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합적 불확실성의 곡선이 완성된 것이다. 청년의 고난은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내가 쌓아 올린 지식 노동, 삶의 시간마저 AI에 의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존재론적 불안감이자 행한 것과 요구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의 방황이다. 20대가 향후 10년을 바라보려면 내 앞의 10년을 보면 되지만 50대가 향후 10년을 바라보려면 30년의 간극을 넘어 10년을 봐야 한다.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SNS를 짧은 시간에 지나고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AI는 충격이다. ChatGPT 등 고성능 인공지능 도구는 글쓰기, 기획, 데이터 분석 등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 공부하는 자격증의 능력을 인간보다 훨씬 잘한다. 오늘 사용하는 AI가 가장 뒤떨어진 AI라는 말은 강력함에 강력함을 더하는 속도까지 존재하는 압도를 의미한다. 이는 사회 초년생의 경쟁력 상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적 격차까지 추가되면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가 벌어진다. 수도권 대학이 대규모 연합 AI 동아리, 관련 인턴십, 최신 AI 인프라를 빠르게 도입하는 것에 비해, 지방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 디지털 지식 경계선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격차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 심리적 지체 현상을 초래한다. 서울의 대학생들이 이미 AI를 활용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관련 기술 세미나에 참석하여 변화를 체화하는 동안, 지방의 학생은 뒤늦게 온라인 강의와 뉴스 기사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는 수준에 머무를 때가 많다. 이는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괴리감을 선사한다. 정신적 고난과 과한 시뮬레이션, 끝없는 비교와 경쟁은 피로감과 무력감을 유발한다. 혁신의 주기는 더 짧아져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학습해야 하는 기술적 피로감도 있다. 빚을 내는 등 재정적 부담을 가지고 다니는 대학에서의 전공이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는 정신적 소진을 일으킨다. 돈 내고 혼나러 다닌다는 말과 대학 졸업장을 종이 쪼가리 취급하는 자조는 비판의 대상이기보다 현실 인식을 적확히 관통하는 말이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느낌은 압박감을 주며 능력주의에 매몰되어 결국 자신을 탓하게 한다. 지방 캠퍼스에서도 서울과의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은 사람을 안달 나게 한다. 이 경우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목표 지점이 너무 멀어, 보이지 않으니 도박적 방법으로 목표에 달성하려는 극단적인 행태에까지 이른다. 이 모두 사회적 비용이다.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하는 환경 위에 20대의 삶의 궤적은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드리프트와 같다.
그렇다고 두 세대가 그린 궤적의 선에 교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 세대의 부채는 분명 하지만 물질적 고난을 감수하여 후대에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한 헌신에는 감사하고 또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 이제 AI는 세대 간 단순 비교를 넘어, 두 세대가 새로운 노동의 정의 앞에 만나게 해 준다. 부모 세대는 기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다음 세대는 기계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인류의 새로운 공동의 도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계와의 협력을 통해 창출해야 할 새로운 가치, 즉 새로운 노동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 고유의 질문 능력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최적의 답을 제시하지만, 가치 판단이 필요한 질문을 만들거나 맥락을 부여하지 못한다. 기성세대가 '열심히 일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면, AI 시대의 교차점(Lines)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왜, 누구를 위해 질문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젊은 세대는 AI 활용 능력으로, 기성세대는 삶의 깊은 통찰력으로 새로운 삶의 궤적을 함께 설계할 수 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윤리적 판단, 미학적 감수성, 공감 능력이야말로 두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빛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기성세대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기준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는 빠른 이직이라는 기준을 내려놓고 인간 고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공통의 빛에서 만나야 한다. 인간을 기계의 부품 정도로 생각하여 개인의 아픔은 뒤로 미루고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나아가던 세상에서는 개성을 가지기 어렵다. 하나의 길을 정해 Best One을 꿈꾸던 사회는 경쟁과 서열이 필수지만 각자의 방향으로 뛰어 Only One이 되는 사회는 경쟁과 서열, 비교가 필요하지 않다. AI를 통해 증강된 개인은 더 가볍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뛸 수 있다. 부모의 경험과 지혜라는 경성 지식과 젊은 세대의 디지털 네이티브로서의 연성 지식이 결합하여 직선과 갈지(之) 자 곡선이 만나 협력적 삶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이제 남녀노소 빼놓지 않고 모두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섰다. 이 선의 이름은 주체적 출발선이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디지털 연결성과 창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달리는 것이다. 전통적 기준의 빠름과 성공은 빛바랠 것이다. 사회가 정했던 규칙에 따라 그려야 했던 성공의 직선 대신 AI와 결합한 인간 고유 영역의 아름다운 곡예를 할 시간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쫓는 대신, 이미 가진 지식을 깊이 성찰하고 AI 도구의 활용 방식을 설계하는 사유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자신만의 속도와 철학을 담아낸 빛은 결국 가장 독창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빛으로 발현될 것이다. 막연한 미래의 큰 성공의 빛 대신 오늘의 학습과 성찰이 작지만, 확실한 미래의 빛이다. 지방 대학생들은 패배감을 공유한다. 고등학교를 지나 성인이 되며 뒤처진 것 같은 불안과 현실의 자조 등이 뒤섞여 이중, 삼중의 정신적 소진을 경험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고 100세 시대의 길어진 생애주기에서 삶의 5분의 1 지점의 결과로 낙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시대는 사람을 버린 것 같았지만 그 안의 역설을 파고들면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만 헤세는 ‘자기답게 사는 것 외에 성장하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라고 말했다. 19세기 인물의 말이 현재도 유용하다. 나 자신이 가장 큰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