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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현정 Jul 21. 2022

슈퍼 J의 밸런스 게임

[에세이] 태스크 디톡스, 아무것도 안하기 참 어렵다- 그쵸?

내가 네 명이 되면 좋겠단 상상을 해보았다. 하나는 일만 하는 ‘나’. 직장가서 일하고 퇴근하고도 개인 프로젝트 일하고 주말에도 밀린 일들하는, 그냥 일꾼 ‘나’. 두 번째 ‘나’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나’. 그냥 잠만 자는거야. 끝도 없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게 마음 편히 잠만. 세 번째 ‘나’는 노는 ‘나’. 게임하고 그림그리고 노래부르고 영화보고 글쓰고. 할게 없어 책도 읽고 스트레칭도 하는, 그냥 노는 ‘나’. 마지막 ‘나’는 바깥으로 여행가는 ‘나’. 전시회도 보고 공연도 보러가고 친구도 만나러가고 모르는 지역과 동네, 산골짜기와 바다, 도심 어디 구석구석으로 놀러가는 나.

 한달을 30일이라 봤을 때, 하루 종일 잠잘 수 있는, 일정 아무것도 없는 날이 하루 있을까 말까하는 편이기에 두 번째 ‘나’는 30일 중 1일 출몰한다. 세 번째 노는 ‘나’의 경우, 하루에 1시간 많으면 세네 시간 출몰, 1주일 평균 10시간인데 4주로 치면 40시간. 잠자는 시간 빼서 하루 18시간이라 하면 약 2일 정도 노는 ‘나’ 발생. 네 번째 ‘나’인 여행가는 ‘나’는 2주에 한 번씩 육지에 가거나 친구들이 내려와서 야외활동을 하니까, 못해도 월 4일 많으면 8일 발생, 평균 6일이라 치자. 그러면 자는 ‘나’ 1일, 노는 ‘나’ 2일, 야외활동하는 ‘나’ 6일. 그럼 30일 중 9일이 빠지네. 남은 21일은 일하는 ‘나’구나. 그것도 아침 9시부터 밤 12시 넘을 때까지. 그냥 일만 하는 거야. 회사 갔다가 퇴근하고도 일, 저녁 챙겨 먹고도 일. 그냥 일. 어휴, 좀 쉬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1일이 자연 발생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각 잡고 휴식 주를 만들어야한다. 월 1일 쿨쿨 잠자는 데이로는 충분하지 않아. 사람이 네 명이 되면 좋겠다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게 되잖아.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란 사람의 운명 같은 것이라 아직 1월임에도 2022년 전체 계획이 세워졌다. 이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냐하면, 1월에 마땅히 해야할 일을 끝내서 게임하거나 글쓰거나 퍼자면서 쉬면 되는데 2월, 3월에 해야할 일들이 벌써부터 해야할 것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서 쉬어도 답답하고 할 거 다 해놓고도 할 일을 미뤄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질병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건가? 알아서, 어련히 미래의 내가 잘도 살아갈텐데 참 문제다. 더 일하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해놓고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게.     






 테스크 디톡스.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 무엇이 자꾸 불안하고, 무엇에 중독되거나 버릇되어 자꾸만 할 일들을 정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생산적인 일을 하려하는지. 또는 인간들과의 일정을 만들어 수행하고자 하는지! 왜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를 못할까? 마땅히 해야할 것들을 다 했고,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으니 조바심느낄 것 없이 공백과 침묵에 스며들면 되는 것을.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기’를 지독하게 못한다. 



 얼마 없는 휴일. 진정 아무런 일정도 해야할 일도 없는 휴일. 다만 방청소, 쓰레기 내다 버리기, 빨래 정도 아니면 장 봐와서 요리해 먹기. 매일같이 또는 종종 일상에서 살아있음을 위해 하는 행위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는 휴일. 편하게 늘어지라 자도 되는 휴일. 매일 아침이면 지겹게 울리는 알람, 그보다 일찍 일어나서 '곧 있을 알람을 끄시겠습니까?' 알림창을 보지 않아도 되는 휴일. 글을 쓸 필요도, 프로젝트 확인 차 실무를 할 필요도, 누구랑 만나 떠들고 활동하며 에너지를 분출할 일도 없는 날. 시간 감각을 지운 채 휴대폰으로 유튜브나 릴스 따위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얼추 어둑해지거나 출출해지면 아무거나 대충 해 먹고 티비를 틀거나 넷플릭스 등을 켜서 봤던 거 또 보고 새로 나온 것도 보며 꾸벅꾸벅 졸아도 되는,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에 좀 익숙해지자. 할 일, 충분히 다 했잖아. 더 할 것 없다. 그냥 쉬면 된다. 그래도 된다고.     



 내가 생각하고도 참 멋진 말이라 생각한다. “태스크 디톡스”. 디톡스는 본디 독을 빼는 것이라 그 앞에 명사를 붙이면 무엇을 통해 뺀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 내 본디 뜻을 살릴려면 ‘디-태스크-톡스’가 되어야겠지만. 

 밀려있는 할 일들. 심지어 전부 한 번에 해내서 끝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루 하루 고정된 양이 있고 적당한 업무 시기가 있어서 미리 해치울 수도 없는, 그렇다고 그 압박을 무시하기도 쉽지않은 것들. 그러한 태스크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태스크들이 뿜는 독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숱하게 쌓여 있는, 언젠간 도래할 수많은 할 일들. 차근차근 차례를 지켜 무더기로 쏟아질 테스크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그 무게를 피해가며 생존하는 게임을 반 자의로 즐기고 있다. 매일 매일의 일정이 가득 차있고 뭉텅이로 존재하는 일정에도 갖은 할 일로 범벅되어있다. 회의와 미팅, 만남, 약속, 업무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 스케줄표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일주일을 산 것 같아, 어서 빨리 주말이, 아니 이번 주말도 못 쉬지, 그럼 아주 일정 없는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는. 삶을 빨리감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해냈을 때, 월화수목금토일 날 기다리고 있는 갖은 태스크들을 결국 다하고 말았을 때, ‘와 진짜 다했네’ 뭐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근데 이미 이렇게 잘 끝날 줄 알았던 것 같아, 이미 여러 번 이런 일을 했던 것 같아.’ 그런 생각마저 들곤 한다. 머릿속에서 그 많은 태스크들을 일정차질없이 처리하는, 그런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돌렸는지. 


 아무튼 그렇게 기어이 얻어낸 휴일이 한 달에 딱 한 번이라는 게 너무나 아쉽지만, 지금 막상 그 1박 2일의 휴일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이만한 단꿈도 없다 느껴진다. 그럼에도 또 월요일부터 펼쳐질 태스크 열차 순행… 아찔하다. 가장 빠른 시일내에 휴일은 약 보름 뒤인데, 뭐 또 내가 알아서 잘 살겠다만… 인생 빨리감기가 시급하다.     





 더럽게 바쁜 시기를 살아냈다. 사실 주말에는 무섭기까지했다. 며칠 잠을 세네 시간, 다섯 시간이 안되도록 자고 그 외의 일정을 아침부터 자정까지 소화했던 터라. 그래놓고 다시 또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아침부터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스케쥴 어플을 들여다보며 분명 무서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커피의 힘이려나, 이상하게도 전부 다 해내게 될 것을 확신했다. ‘나’는 ‘나’를 수없이 분절하여 어떠한 ‘나’를 이끌고 가는 여러 ‘나’들이 엮어 살아내고 있구나, 또렷이 느껴졌다.     


 매 계절, 계절감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놀러가 그곳만의 정취와 시절의 풍미를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내 삶을 꾸리는 데에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봄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 갖은 곳으로 봄꽃놀이를 가고, 축제와 공연, 전시도 놓치지 않고, 여름엔 여름다운 곳으로, 가을엔 가을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겨울은 겨울만의 분위기가 한가득인 곳으로. 그러니 돈을 모을 수도, 집에서 늘어져라 쉴 수도 없는 팔자 아니겠어. 그 모든 곳들을 애인과 다양한 친구들, 가족들과 두루두루 일정을 짜서 방문한다. 그러니 매년 풍성하고 풍요롭게 추억이 쌓여가는 것이겠지. 내 삶의 자산이자 보물.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고 아름답게 노는 것. 돈 많은 백수가 되어 마음껏 놀고만 싶은, 본투비 한량,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세대.     

 

 근데 또 노는 것만 좋아한다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일도 무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을 그만 해야한다 사실. 최근래에 이슈로 꼭 쥐고 있었던 것은 다음 문장이었다. "내일의 일을 오늘로 당기지 말자." 일을 미루는 것보다 때에 맞추어 분배해둔 일들을 괜한 조급함에, 과한 집중력에 의해 모든 것을 미리 처리하려 들 때가 너무 많다. 백번 다시 의미부여를 한다 해도 일은 일. 일하는 것은 그 정도가 심하면 무리가 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러니까 온종일 일을 했으면 좀 쉬란 말이지. 뭐에 홀린 것 마냥 일만 쳐하는 자신을 마주칠 때마다 편히 쉬지 못하는 불쌍한 현대인, 자기연민이라는 우스운 함정에마저 빠지고만다.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일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재생산'과 '생산'의 밸런스를 확실히할 필요가 있다. 일에 대한 부담,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이 없는 편한 마음으로 잠들기. 건강한 음식을 먹기. 내 신체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충부히 움직이고 건강을 위한 운동하기. 사는 공간의 청결과 자연 생태, 위생을 위험하게 방치하지 않기. 게임과 문화 콘텐츠, 친구와의 잡담 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소소한 일과를 틈틈히 일상에 채워두되, 다음날에 무리가 가도록 너무 취하지 않기. 이 다섯개를 재생산의 영역에 둔다. 생산의 영역으로는, 관심사와 지적 욕구를 위한 독서를 꾸준히하기. 다양한 글쓰기를 하기. 악기 연습하기. 개인 프로젝트 완수하기. 외국어 공부 시작하기. 이 다섯개는 생산의 영역. 당연한 생산의 영역인, 생계를 책임지는 직업은 알아서 잘 해낸다. 




 생산과 비생산 영역의 모든 것들이 잡음없이 굴러가도록 아귀를 맞춰가기. 너무 쉽게 일정과 체력분배, 또는 이상과 행복도에 밸런스 붕괴가 찾아오지만 어디선가 이상한 생각이 당연하단 듯이 찾아온다. 신경써야 하는 것들이 물리적으로 너무 많고 제각각 난관도 커다랄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는 생각. 당연하게 드는 확신. 허나 십여년 전과 다르게 '근거없는 자신'이 아닌 것 또한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내가 살아낸 인생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그러니 내가 믿을 것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그 모든 나를 이어내는 현재의 나. 이런 나를 둘러싼 우리 세계의 호흡. 그러니 오늘도 그저 오늘의 주어진 몫을 잘 풀어내고 매듭지으면 된다. 집중, 현재에. 행복하게 모든 것을 만끽하기. 이것이 현재의 '나'가 수행할 최우선의 목표인 셈. 부디 아슬아슬한 생산-비생산 일상 밸런스 외줄타기를 익숙하게 해내는 ‘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몫의 테스크 디톡스 한 잔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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