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모르겠고 #제주살이 #3년차 #진심 #선 #섬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며 생을 살아오다 보니 많은 일들이 나를 뒤흔들고 갔다. 그렇다고 나의 본성이 변할까 싶지만 나도 어지간한 바보는 아니니 느낀 바가 꽤 있단 말이지. 그 중 하나는 대놓고 선을 그어 보여주는 이들이 아닌, 받는 것에는 수용적 그러나 베푸는 것에는 회피적인 사람들에 대한 것. 단순히 ‘얼굴 보자’라는 차원의, 네가 보고 싶어서, 친목을 위해 연락하는 것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들. 계속 인연을 이어가야 하니까, 어떠한 소식이 있다 하니까, 특정 정보가 필요하니까 연락하는 사람들. 내 속은 전부 들여다보고도 자기 속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러면서 내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말로 인해 내가 자기를 내려놓지 못할 것을 아는 사람들. 언제나 나를 후순위에 두고도 나에게선 최선의 것들; 예를 들면 마음, 노력, 정보, 시간 등을 받아가는 사람들. 심지어 ‘당신 때문에 속상해’, ‘서운해’라고 말을 했을 때, 어이없어하거나, 이해를 못 하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입장만을 설파하는 사람들. 과연 그들이 자기 주변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까 생각해보면, 분명 나에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존중을 보이고 있단 것이 보이거든. 그냥 ‘이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나를 취급하고 있는 것만 확실해지지.
처음엔 그들이 그런 식의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진심을 다해 마음을 교류했으니까, 언제고 그 마음에 대답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딴 건 내 희망 사항일 뿐, 생각보다 주위에 이런 류의 사람이 많더라고.
차라리 선을 긋지, ‘난 네게 내 마음을 주지 않아’, ‘널 마음 한 켠에 둔 것처럼 보이겠지만’-이라고.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이기적인 것뿐일 사람들. 웃기게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를 고문하는 사람들. 그 모든 걸 모른 채, 모른다고 생각한 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마음을 다했던, 그 모든 사람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결국엔 하나둘, 나보다 더 소중하다는 자신과 자신의 다른 존재들을 향해 떠나갔지만. 난 나보다 당신들이었는데 그건 내 특이사항일 뿐. 참 웃기지. 근데 말이야, 왜 별말 없이 내 마음을 가져간 거야? 마치 네 마음도 줄 것처럼 말이야. 최소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들 양심조차도 쓸 생각이 없었으면서 말이야.
질문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들려올 답이 너무 뻔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친구가 된 이후로 수없이 질문하고 결심했던 것들이 떠올라. 내게 난 뭘까, 너도 날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는 걸까? 그런가 봐, 아니야 아닌가 봐. 널 더 좋아하지 말아야겠다. 아니, 난 너가 너무 좋은걸. 혼자 묻고 답하고 결심하고 다시 답을 내리고 또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 결심하고 무너지고 반복하던 세월. 이제야 조금은 알겠더라고. 정말 좋은 사람은, 나와 맞는 사람은, 내 마음을 가져갈 가치가 있는 사람은, 내가 이딴 질문을 하지 않게 한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딱 이만큼만,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바보같이 사랑했던 모든 나날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성장통이 끝나서 더는 아프지 않아. 앞으로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바보처럼 사랑하겠지만, 난 그게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계속 바보일 예정이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어줄 바보가 되는, 난 그런 내가 좋아. 너도 그런 너가 좋아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 그러니 너나 나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이 적당한 거리감으로. 지난날 찰나의 마음 교류는 추억으로 삼고.
이곳 제주로 이사 오고 섬사람들이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를 3년째 듣고 있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 경험에서는 환대와 열린 마음을 더욱 많이 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까워지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나에게 이곳은, 사랑해 마다치 않을 우주를 만날 바다이다. 기존의 인연들과는 물리적인 거리감 때문에 많이 소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비행선이다. 내 마음의 섬은 홀로 둥둥 떠있지 않아- 적당한 거리감이 아닌 든든한 편안함으로 새로운 사람을 새롭게 사랑하고, 여전한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산다.
그리고 사실 배타 됨을 즐기기로 했다. 쉽진 않지만 이질적 존재임을 인정받고 분리됨, 동화되지 않음, 거부당함, 다름, 배척됨 등 다양하게 부정적으로 비집단화, 반동기화 되는 것을 즐기려고. 뭐, 어쩌겠어. 누구나 어디를 가든 각각의 고유한 성질 때문에 서로서로 배타됨을 느끼는걸. 그걸 느끼면서도 아, 내가 이 그룹으로부터 완전한 '타'인이구나 하고 느끼느냐 마냐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다만. 미움을 받는 것을 누가 즐길 수 있겠어. 근데 그냥 달라서, 불편해서, 잘 모르겠어서 멀리하는 것이라면, 쉬이 가까이 둘 수 없겠다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래. 그건 받아들여지네. 그러니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날, '타'인인 날 아껴주고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다정하고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 애초에 사랑이라는 건 어려운 것이었지. 다가가고, 알아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인연을 된다는 건 얼마나 큰마음의 품을 들이는 일이었는 지를.
이번 생일은 유독 사랑을 많이 받았다. 정말 많은 사람에게 말이다. 친한 친구들, 가족, 애인, 친하지만 자주 소통하지 못하는 친구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소중한 친구들, 못 본 지 꽤 된 친구들, 직장 동료와 선후배, 선생님들. 제주에서 만나 진해진 인연들까지. 세다 보면 끝이 없다. 선물도 편지도, 정말 많이들 챙겨주셨다.
그래서인지 더욱 네 생각이 들었다. 네 생각이 나서, 너가 내 마음에 자리해서.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전해져온 온기. 제 몫이 정해지지 않은 사랑. 제값이 매겨지지 않은 사랑. 주인도 출처도 없이 자유롭게 날아든 사랑들. 너무나 고마운 거 있지.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마음을 전부 알아주는,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는 기분 말이야. 이렇게까지 복 받아도 되는 것인가, 이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그러한 생각까지 들었지 뭐야.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 모두를 더욱더 많이, 제대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져, 그렇게 굳게 결심하게 되는 거야. 그 모든 이들이 전해주는 진심을 한가득 받아서 또다시 전해주고 반복 또 반복, 긴긴 인생의 실타래 위에 마음과 마음을 촉촉이 쌓아가고 가겠다는 결심.
내가 사람에게 정말 많은 마음을 쓰는 사람이란 사실은 가끔씩 나를 비참하게도 만들지만, 언제고,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날들 속에서 나를 따뜻하게, 강인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진심으로, 어쩌면 “굳이?”인 일을 스스로가 피로해지고 불편한 일을 나서서 도우려 하는 인간. 어쩌면 오지랖, 다른 이름은 정. 여유는 마음을 널따랗게 해, 내가 더 큰마음을 쓸 수 있게 해줘. 어떤 사람들은 함부로 대한 마음일지라도, 실망하고 아쉬워할 틈 없이 다시금 자리를 내어 여유를 만든다. 또 다른 누군가가 자리할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그러니 게으름 없이 힘을 내어 여유들을 잘 간수해야지. 언제까지고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 누구든 마음 깊은 곳, 진심이 닿는 우물물을 길러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섬에 언제라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여유와 탄력을 잔뜩 길러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