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우울증 극복기
나는 수년 전 우울증이란 걸 앓았다.
비록 우울증이란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건 분명히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세 쌍둥이.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산후 우울증이 시작됐다. 결혼 전에도 감정 기복이 심한, 유리멘탈이었던 내가 세 쌍둥이를 키우다니. 이상해 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툭하면 눈물이 흘렀고 앙칼진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도무지 이성을 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우울증은 분노조절장애라는 가면을 쓰고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그 우울증이란 녀석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신생아 아이들은 밤새 수시로 분유를 먹어야 했고 나에게서 잠이라는 것을 빼앗아 갔다. 수면은 물론이고 식사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없던 날들.. 대체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없었고 어두운 밤 숲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고 신경이 예민해 있었으며, 분노라는 녀석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 당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플라스틱 장난감 공을 아이에게 던져, 아이가 사망한 사건, 어린이집 아동학대등이 뉴스로 보도가 되었는데 그 심정이 100%, 1000%, 10000% 이해가 될 정도였다.
'아, 이러다 내가 죽거나 애들이 죽거나 뭔가 사단이 나겠구나'
사람이 해결해야 할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없던 나의 마음엔 이미 만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었다. 자꾸만 폭력을 휘두르고 싶고 뭐라도 부숴버리고 싶고 누군가를 헤하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문득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나?' 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불쑥 들었다.
어느 날 자려는 신랑을 깨워다가 말을 걸었다. '나 이러다가 내가 죽거나, 애가 죽거나 사단이 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혼자만 앓고 있던 내 마음을 신랑에게 털어놨다.
'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게 어때?' 극 T인 신랑은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나에게 조용히 조언을 했다. 위로? 그런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고 해주지도 않았지만 정말 그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말 못 했던 감정을 한번 쏟아낸 게 뭐라고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심리 상담센터를 예약했고 내 감정을 공감해 주는 상담사 선생님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신기했다. 단 1회의 상담만으로 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었고 상담소를 나오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워졌던 것이다. 정말 놀랐다. 마음이 힘들면 무조건 상담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그날 깨닫게 됐다. 우리가 마음이 힘들면 가장 먼저 심리 상담소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정신과의 문턱은 아직까지도 높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우울증의 기세가 한풀 꺾였을 때 나는 또 다른 고비를 만났다.
3년이란 휴직 후 아직 내 자리를 보존해 준 직장에 적응을 해야 하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휴직 기간이 길어 생긴 업무 공백은 네 살짜리 세 쌍둥이 워킹맘이 메꾸기엔 너무나도 컸다. 새롭게 배우는 업무가 미숙했던 시기,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일역시 미숙했기 때문에 출근길과 퇴근길이 지옥과도 같았다.
일도 육아도 모두 망쳐버리는 기분이었고, 어떤 걸 해도 아무것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기에 내 상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아 업무적 스트레스는 극을 달했고 집에서도 뜻대로 안 되는 육아 스트레스는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올가미는 어떻게 만드나?'
'방문 사이에 철봉을 달고 매달면 되나?'
어느 날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말을 걸어왔다. 나보고 이제 그만 쉬라고, 죽음을 택해보라고.
많은 우울증 환자가 생을 스스로 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아, 이제 좀 쉬고 싶다'라는 거란다. 내가 그랬다. 어느 날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이제 그만 좀 쉬라며 말 거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때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날 보며 웃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없다면 이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늘은 감사하게도 내가 살아내도록 도와줄 천사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줬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 나에게 몇몇의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선물해 줬다.
잠잘 시간이 부족해도 살기 위해 꾸역꾸역 읽어냈다. 그렇게 나는 책 몇 권으로 내 마음을 위로받고,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했으며,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쳐먹었다. 독서가 세상 누구보다 싫어했던 내가 '인생책'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 권, 두권,,, 책이 주는 위로에 푹 빠져들었고 조금씩 나를 찾게 됐다.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을 하나씩 탐독하기 시작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채웠고 우울증 이란 걸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겐 수호천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갔을 때 새로운 형태와 기회로 다가와 내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그 기회를 알아차리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고 다시금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웅크려진 시기만큼 훨훨 멀리 날아가라고 힘든 시기를 겪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혹여나 삶을 마감하고 싶은 우울한 감정이 들거든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힘든 시기를 잘 견딜 수 있게 힘을 주는 이야기로 우울증 극복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빈곤에 빠트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맹자의 고자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