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쟤인 것 같고, 쟤가 얘인 것 같았던 너희들
로또의 확률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일란성 세 쌍둥이를 낳은 나
나는 사람의 특징을 잘 구분하는 눈썰미가 애초부터 없었던 사람이다. 초등학생시절 내 친구 중에는 정말 똑같이 생긴 일란성쌍둥이 친구가 있었는데 두 친구를 보고 있자니 정말 누가 누군지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친구들의 엄마는 과연 저 친구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라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잘 못 외우는 나. 아마도 하늘은 나에게 그 고질병을 고쳐주고자 똑같이 생긴 세 아이를 선물해 줬을지도 모른다.
워낙 건강했던 나였기 뱃속에 아이들을 비등비등하게 키울 수 있었고 2kg씩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한 아이가 아주 조금 몇백 그람 차이로 날씬하게 태어났지만 그녀들을 비교하는 지표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출산 후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만나로 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명의 아이들이 정말 복제한 듯 똑같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팔찌가 있었고 각자의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OOO아기 1, 2, 3으로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해도 팔찌를 보지 않으면 얘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조리원에서는 속사게 위에 친절히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주셨기 때문에 '이름을 구분해야지'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퇴소한 것이 사실이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때부터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너도, 너도, 너도 정말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구분할 수 있었던 지표는 딱 두 가지, 몽고반점의 위치와 얼굴에 작고 조그맣게 나있던 좁쌀 여드름 같은 뾰루지들의 위치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아이들을 구분했다가는 언젠가 이름과 인생이 뒤 바뀌어 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의 엄마는 젖어도 금방 마르는 색실로 발찌를 만들어주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발목에 조이지 않게 뺐다 꼈다 할 수 있는, 그렇다고 금세 빠져버리면 안 되는 적당한 길이의 실묶음을 만드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지만 솜씨 좋은 나의 엄마는 그것을 뚝딱 만들어 냈다.
그렇게 그녀들에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구분하여 쳐다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발찌가 없어도 얘는 확실히 얘다!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색실은 그녀들의 이름표가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 아이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려 노력했는지 모른다.
나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는 아이들의 얼굴을 구분해 내기 위해 온 감각을 동원했다. 그렇게 나에겐 눈썰미라는 것이 스멀스멀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뾰루지의 위치는 자주 변했지만 몽고반점의 위치는 그녀들을 확실히 알아보는 지표가 되었고 아이들마다 다른 위치의 몽고반점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몽고반점이란 것이 삼신할머니가 엄마 뱃속에서 빨리 나가라고 때려서 생긴 점이라는 썰이 진짜 맞는 건 아닐까? 똑같은 곳을 때릴 수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 번은 아이들 인생이 뒤바뀔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색발찌를 문 앞에 벗겨두고 한 명씩 순서대로 씻기던 도우미는 아이를 차례로 건네받고 발찌를 빼고 끼우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나 보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온 아이의 얼굴과 발찌의 색이 다른 것이 아닌가?!
온 감각을 동원해 아이들을 구분해 내고 있는 나에겐 너무나도 이상했다. 분명 이 애기는 이 색실이 아닌데 색이 바뀌어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아이를 구분하던 몸의 지표를 이용해 나는 요리조리도 열심히 아이를 탐색했고 색실이 바뀌었다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아이들의 바뀐 색실은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때의 그 사건이 과연 아이들의 인생을 바꿔놨을까? 그런 의문은 0.00000000001% 정도는 내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이 이야기는 아직 아이들에게 밝히지 못했다.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이랄까? 알게 되면 마음 한편에 담아둘까 봐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컸을 때 여담처럼 해볼까 싶다. 어차피 아이들은 자신의 색실을 제대로 찾았으니까 인생이 바뀐 일은 없을 거니까. 언젠가 내가 말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녀들을 키워내며 살아온 자취를 이 브런치 글로 읽게 될지도... (내 글을 먼저 읽는 그녀들에게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엄마가 어떤 사람이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5-6개월 지났을까? 그제야 이 세 아이의 특징이 정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목소리만 들어도, 뒷모습만 봐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생겼던 것 같다. 똑같이 생겨서 정말 구분할 수 없는 일란성쌍둥이들의 부모는 그들을 무조건 구분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어떻게 구분해요?'라고. 대답은 똑같다. '그냥 딱 보면 구분이 돼요.'라고. 어두운 밤 뒤척이는 모습,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 우는 목소리, 웃는 목소리, 실루엣만 봐도 그녀들을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 정말 재밌는 사실은 내 아이들은 똑같이 생겨도 구분이 되는데 몇 년을 봐온 일란성쌍둥이 남의 아이는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힘들다. 내가 키운 눈썰미는 내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닐까 의심해 볼 부분이다. 그런 나도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 전화목소리는 기계음이 섞여서일까 정말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하나의 폰을 셋이서 같이 쓸 때는 '너는 누구야?'라고 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말이 그녀들에겐 섭섭했겠지?)
생긴 것이 얼마나 똑같은지 어린이날 졸업식 때 받은 아이들 영상에서 뒤죽박죽 섞인 세 아이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그녀들을 구분하는 것이 곤욕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편의를 생각하여 나는 이름이 써진 머리집게핀을 매일같이 그녀들의 머리에 꽃을 수 있게 준비했다. 그때는 사진만 봐도 얘가 누군지 금방금방 알아챌 수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셋을 구분해 내는 게 엄마인 나도 쉽지 않다. 더 웃긴 것은 그녀들 조차 '얘가 누구지?'란 내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기도 하고, 신발로 자신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참 세상은 정말이지 재밌는 곳이다. 만화에서나 만나봤던 세 쌍둥이.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는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또 그 속에서 그걸 적응해 나가며 헤쳐나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나를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살아내나 싶던 지옥 같은 시간들이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고,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기 아이템을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나를 새롭게 살게 해 준 아이들이 정말 정말 고맙다.
다음 이야기 : 이산가족, 우리는 그렇게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