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미야, 혹시나 집이라도 나갈까 봐 내가 자주 방문했다

세 쌍둥이 육아 대잔치

by 세쌍둥이 엄마

나는 전쟁 같은 육아를 치러낸 여자 대장부다.


산후 조리원을 퇴소한 뒤 집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세 쌍둥이 육아 전쟁은 퇴소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산후조리 비용을 아끼고자 산후도우미를 쓰지 않았던 것이 최대의 실수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비상한 각오로 맨땅에 헤딩하듯 세 쌍둥이 육아를 시작했던 우리는 너무나도 무지했다.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 명의 아이조차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친정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셨지만 우리는 무식하게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의지만 불태우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그런 날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함께 돌봐주러 우리 집으로 오셨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쉽지가 않았다. 울어대는 아이들이 뭐가 필요한지, 신생아를 어떻게 다루는지,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가 축축한 건지, 잠이 오는 건지.. 신생아의 울음은 날카롭고 앙칼지며 이유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나의 엄마도 신생아를 키운 지 오래됐을 터. 엄마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지만 그즈음 허리를 다친 엄마와의 공동 육아는 전략적으로 실패한 계획이 되어버렸다.


밤에 잠이라도 청하려면 한 시간에 한 번은 꼭 깨야만 했었고, 출근을 해야 했던 신랑이라고 예외란 없었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깊은 밤 숲 속을 헤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나의 엄마와 아빠는 물론이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손이 아주 많이, 자주 필요했다.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우리 집을 방문했고 시댁 식구와 친정식구가 다 함께 동고동락하는 아주 이례적인 관경은 우리 집에선 그저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 번은 시댁 식구들이, 한 번은 친정식구들이,, 가족들이 모두 총 출동하여 공동육아를 시작했는데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체계도, 통일성도 없는 막무가내 뒤죽박죽 육아였다. 이내 도우미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며 세 쌍둥이를 함께 돌봐줄 도우미를 찾기 시작했다.


세 쌍둥이 도우미, 누가 지원할까?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선뜻 우리들을 돌봐줄 도우미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와 추가로 가족 한 명이 꼭 함께 붙는다는 전재하에 우리는 도우미를 구할 수 있었고 도우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출산 후 1-2년가량은 온 가족이 들락날락 수시로 우리 집을 방문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도우미가 있어도 자주 방문을 하셨는데, 한번 오시면 몇 날 며칠을 자고 가셨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가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서 편하게 자는데 어머님은 늘 거실의 소파에서 쪽잠을 청하시는 편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라며 불편한 잠을 주무시는 시어머니.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1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최근 어머님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내가 '혹시나 집이라도 나갈까 봐, 너무 힘든 나머지 옳지 않은 선택을 해버릴까 봐 내가 자주 방문했었다'라고.. 그 말엔 과부로 남겨질 본인 아들에 대한 걱정 또한 녹아 있었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섭섭한 듯했던 그 말이 정말 맞았다. 나에게 그런 지원군이 없었다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이렇게 정상적인 삶을 살아낼 수도 없었을 거다. 세 쌍둥이 독박육아는 내 마음과 내 몸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솔직히 나 혼자 아이 셋을 봤다면 깊은 우울증에 빠졌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나를 이렇게 살게 해 준 가족에게 참 고맙다. 그리고 참 잘 살아낸 내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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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아이 셋을 가진 이유 역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함을 위해서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세 아이를 얻고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은 몇 곱절 더 많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삶의 철학을 갖게 되었으며,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이란 단순히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치며 나는 더 단단해졌고 가족 간의 사랑을 배웠고, 건강과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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