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우리는 그렇게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육아의 오점.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by 세쌍둥이 엄마

이산가족. 내 사전에 없던 가족생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친정 부모님의 손도 빌려보고, 가끔 오시는 시부모님의 손도 빌려봤다. 한 명의 도우미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역부족이었다. 제대로 된 산후조리를 못한 채 육아전쟁에 투입되었던 나는 관절부터 시작해 조금씩 몸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육아 초자인 내가 도우미와 함께 한들 두 명이 셋을 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매달 고정으로 나가는 기저귀 값이며 분유값에 신랑은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가다간 누군가 하나는 나가떨어질 것만 같아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


우리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의논을 시작했다. 무엇이 지금 상황에 있어 가장 좋은 선택이 될까..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본인의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시부모님들은 아이 둘을 내려보내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시댁에서 도우미 한 명을 고용해 두 명이서 두 명을 맡아보시기로 했고 한 명은 엄마인 내가 혼자 돌보는 것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의 육아에서 가장 오점으로 남는 선택이었다. 아직 내가 엄마가 맞나 어리벙벙했던 시기, 모성애라는 것이 아직 발현되기 전, 아이들이 6개월이 되기 전의 일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으리라.


나중에 돌아올 후회와 죄책감이 얼마나 큰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그 제안에 감사함을 표하며 동의를 했다. 기약 없는 생이별을 준비하던 저녁. 깔깔 웃는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예쁜지 그날 처음 느끼게 됐다. 과연 이것이 맞는 결정인지, 양육자를 단번에 바꾸는 일이 훗날 아이들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생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한 날 시부모님이 집에 오셨고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떠나셨다. 나중에 이야기하셨지만 그렇게 내려간 두 명은 몇 날 며칠 밤새 울었다고 한다. 두 아이들이 떠났던 날 조용한 집에 남겨진 나와 아이 한 명. 그 적막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혼자 한 명을 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거란 착각을 하면서 나는 단 한 명의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결과는 대 반전, 한 명을 혼자 돌보는 일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아직 육아 초자에 산후 우울증 비슷한 것이 겹쳐 온 나에겐 독박 육아란 실로 곤욕과도 같았다. 나도 모르게 끌어 오르는 분노조절 장애를 잠재워줄 누군가 필요했으며 나와 이야기할 누군가는 꼭 필요했던 것이다. 신랑이 출근한 시간, 만날 친구도 없던 나는(내 친구들은 그 당시 모두들 결혼 전 상태였다) 하루하루 외롭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고 내 새끼라는 두 명은 생이별을 하고 있었으니 제정신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의지박약은 아이들과의 생이별도 모자라 남편과의 생이별로 이어졌다. 혼자 아이들을 보는 게 힘들었던 나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도피했다. 참 어리석었던 선택이었다.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를 나의 육아무지와 우유부단함으로 날려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는 것. 서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 형태는 도무지 적응하려야 적응을 할 수 없었고 주 양육자인 내가 중심이 되어 셋이 함께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부랴부랴 나는 짐을 싸고 두 아이들이 있는 시댁으로 향했다. 시댁에서 셋이서 함께 생활하는 적응기를 가진 뒤 집으로 복귀하기로..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경제적 주권을 가진 것이 시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어 달 남짓한 나의 시댁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능글맞게 시부모님들을 대했겠지만 그 당시 남편 없는 시댁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살기엔 나는 너무나 어렸다. 한 달 남짓 엄마를 못 본 아이들에겐 나는 너무나 낯선 불청객이었고, 엄마 행세를 하려는 나와 자꾸만 마찰을 빚었다. 육아 애착기를 할머니와 한창 보낸 아이들은 할머니가 너무 좋았고, 나는 그저 손님에 불과했다. 그런 아이들과 그걸 은근히 즐기시는듯한 어머님에게 나는 서운함이 들었고 붙지 않으려는 자석을 자꾸만 붙이고자 노력하는 꼴이 돼버렸다.


한 달 남짓 떨어져 생활하던 패턴 역시 달랐으며, 어머님과 나의 육아 관점 역시 너무나 달랐다. 시댁에 있던 한 두 달이 어머님과 나와의 사이를 가장 멀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어버렸고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이 내 육아인생에 가장 큰 후회와 오점을 남겼다. 독하게 스스로 아이들을 보지 못했던 나의 우유부단함과 무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남편과 가장 사이를 돈돈히 다져야 할 시기, 아빠와 돈돈하게 애착관계를 쌓아야 하는 시기 나와 아이들은 신랑과 떨어지게 되었으며, 여러 양육자들로 인한 일관성 없는 육아로 대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자기주장이 강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가까이 지내면 절대로 안된다는 깊은 교훈을 얻으면서 말이다.


나는 그 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이루어야 할 주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아이들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 정서에, 그리고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 누군가에 대한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도. 그 시기에 주 양육자 간의 애착관계는 무조건적으로 잘 이루어야 함을 버스가 떠난 후에야 몸소 깨닫게 되었다. 육아 지식은 아이를 키우면서 저절로 습득되기도 하지만 분명 준비는 필요하다는 것 역시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산가족. 한두 달의 기간, 길지 않은 것 같지만 신생아인 아이들에겐 기나긴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형태는 나에게 깊은 죄책감이란 것을 남겼고 그 이후 애착관계와 시부모님과의 관계에 크나큰 생채기를 냈다.


비록 나에겐 죄책감이란 게 남았지만 그 감정을 발판 삼아 훗날 아이들에게 더욱 애정이 쏟아졌길 바라본다.


예비 부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육아 상식뿐만 아니라 아이들 정서에 꼭 필요한 육아 지식은 아이를 갖기 전에 꼭 미리 알아두면 좋겠다고.. 그래야 어차피 남을 죄책감이라도 그 무게를 덜 수 있다고..


다음 이야기 : 어머님, 왜 제말 무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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