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육아에 미친 엄마

책에 집착하는 엄마와 책장이 터져나갈 것 같다는 아이들

by 세쌍둥이 엄마

모든 부모들이 그럴까?


자기가 못해서 아쉬웠던 것, 이루지 못한 꿈, 안 했더니 살면서 불편했던 것들을 자식에게 투영해서 집착하듯 시키는 부모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너만은 꼭 나처럼 살지 말아라'하는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자식에게 전가되는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딱 그런 케이스. 내가 아이들에게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바로 '독서'였다.


독서가 너무나도 싫었던 나.(초등학교 독후감 숙제는 늘 언니에게 돈을 주고 샀던 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독증에 가까울 만큼 문자 해독이 어려웠으며 내가 읽고 있는 것이 문장인지 낱낱개의 글자들 인지도 모를 만큼 문해력이 떨어진 아이였다. 내 기억 속엔 읽었던 글자를 이해하며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성이란 근성 하나만으로 (그저 문제를 풀고 풀고 또 풀고 달달 외우는 능력으로) 학생시절 중, 상위권으로 유지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매일 만화책만 보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늘 공부를 하지 않았다며 불평을 쏟고도 시험에서 전날 밤늦게 까지 공부한 나보다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때부터 나는 독서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피어났던 것 같다. 독서가 중요하구나를 느꼈지만 막상 제대로 된 독서를 해본 적 없었던 나.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흥미로운 것들이 도처에 널린 대학생활은 독서와 더욱 담을 쌓게 만들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나에게 독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고, 문해력이 부족했던 나는 인물과의 관계, 사건의 연계성 등,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워 책 한 권을 떼는 시간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교과서 외에 독서는 전혀 하지 못한 나는 사회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역시 어려운 과제였고 눈치와 센스가 필요한 직장에서 나는 '눈치 없는 아이'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런 상태로 엄마가 된 나.


이해력과 문해력 부족으로 받은 사회생활의 수모와 고통은 내 새끼만큼은 독서와 담을 쌓게 하지 않으란 이상한 집착으로 변해버렸던 것 같다. 세 쌍둥이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는 시기, 아이들이 3살, 4살이 될 때부터 책육아에 대한 집착은 시작되었다.


그런 나는 어린이 책 판매 영업사원들에겐 너무나 좋은 타깃이 되었을 거다. 웅*, 키즈*스콜레를 시작으로 나는 전집단위로 책을 하나씩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고 '거실 서재화'라는 명목으로 읽지 못한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거실 책장을 가득 메운 책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나가고 있었다.


책만 보면 욕심이 생기고, 화려한 책 표지만 봐도 구미가 당기고, 집에는 골고루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책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으로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새책, 중고책 가릴 것 없이 유아 책들은 나에게 사고 싶은 대상이 되어버렸다. 책 욕심은 많은데 책을 알아보는 눈이 없던 나는 4살 아이들은 읽을 수 없는 초등 고학년 도서들마저 쟁여두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책육아는 매일 밤 반 강제적인 잠자리 독서로 이어졌고, 자꾸만 책을 사모으는 나에게 아이들은 '엄마 이러다가 책으로 집이 터져나가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가 아이들이 6-7살쯤이었던 것 같다. (반짝이는 새 전집들을 사느라 돈도 참... 많이도 썼다.) 오죽하면 이 어린아이들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렇게 책육아에 집착하면서 매일 잠자리 독서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매일 잠자리 독서는 영역을 골고루 읽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힌 나와, 읽었던 재미난 책을 또 읽고 싶은 아이들은 나에게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그때 내 강박의 무한 질주를 끊어 줬던 신랑의 한마디 "그냥 제발 읽고 싶은 걸로 읽게 놔둬~!"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의 합의점을 찾아 각자 읽고 싶던 책 3권씩을 뽑아(당연히 나는 읽히고 싶은 영역의 책을 꺼내왔다.) 매일 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도 책육아에 미친 나는 힘든 줄 도 모르고 총합이 12권이 넘는 책을 아이들을 머리맡에 눕혀 읽어주기 시작했다. 책 읽어주는 소리에 잠이 드는 아이들과, 읽고 있던 책을 잠결에 떨어트려 얼굴에 맞은 적이 셀 수 없이 많을 만큼 우리는 그렇게 몇 년을 잠자리 독서를 끌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책에 왜 그리도 집착했나 싶지만은 지금 초등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그때 내 집착이 그래도 쓸모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심심하면 꺼내드는 것이 '책'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애초에 내 계획의 반은 성공했다 싶다.


책을 지지리도 싫어했던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만들고 싶었으며 문해력이 딸렸던 나는 '아이들만큼은 독서로 문해력의 장벽을 뛰어넘었으면' 싶었다. 나의 광기 어린 집착이 어쩌면 훗날 아이들에게 거부감으로 남을 수 있겠다마는 그래도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


내가 책육아로 추구하는 바람은 딱 하나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면 '독서'를 통해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하는 것. 책과 담을 쌓았던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우울함,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아이들을 잡아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튼튼한 동아줄. 그것이 바로 '책'이길 바란다.


문해력과 상황판단력, 눈치가 지지리도 없던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또 하나 얻은 기적 같은 일이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화에 담아보겠다.


다음 이야기 : 그림책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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