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기절

그림책의 기절이 기적으로

by 세쌍둥이 엄마

나는 어릴 적부터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난독증 아닌 난독증 같은 증상을 앓았고,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연간 독서량이 1권이 채 못 되는 인간이었다. 독서의 필요성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독서를 시작할지 몰랐던 나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나를 투영시키며 책이란 것을 강요하게 되었다.


일타 삼피의 느낌이 강했던 나. '그래, 너희만은 독서를 잘하는 사람을 만드리라'라는 집착이 아직까지 진행 중인 책육아를 9년 차까지로 안내해 준 듯하다. 아이들이 세네 살쯤이 됐을 때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잠자리독서'를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읽어주고 싶던 책을 시작으로 권수를 늘려갔으며 점차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 몇 권씩과 내 욕심으로 읽히고 싶던 책 몇 권을 읽어주는 형태로 모습을 바꿔갔다. 그림책은 아주 짧고 읽어주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라 접근성이 좋았다. 한 사람당 읽고 싶은 책 3권씩만 들고 오더라도 12권이었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책 12권 이상씩은 꼭 읽고 잠이 들었다.


고생은 나만 할 수 없지. 책육아의 압박은 남편에게도 퍼져갔으며 남편 역시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반 강제적으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원하는 책을 가져오던 아이들은 자기 딴엔 너무 재밌었는지 한 달 이상 똑같은 책을 잠자리 독서 도서로 들고 오기도 했다. '제발 이 책은 이제 그만~' 하고 말하고 싶을 만큼 지겹도록 같은 책을 읽어댔다. 펼치기도 지겨운 책들을 무한 반복했고 글자를 아직 못 읽는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외운 책 내용을 그대로 읽을 수 있을 만큼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어나갔다.


그 시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칫 편독처럼 보일 수 있는 반복독서가 천재들의 독서법이라는 사실을 지나고 난 후에서야 알게 된 것. 너무나도 지겹고 지겨웠던 나와 신랑은 '또 이 책이야? 이제 다른 책 좀 읽자'며 반복독서를 방해하는 방해꾼이었던 것이다.


그 시기엔 그렇게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반복 독서가 흔히 일어나는 시기란다. 골고루 읽히고 싶은 부모의 욕심으로 그 천재들의 독서법을 막지 말라는 독서 전문가의 조언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그 지겨움을 조금이라도 잘 넘겼을 텐데 아쉽다.


잠자리 독서가 이삼 년간 지속되고 있는 동안 나는 3년이라는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게 됐고 워킹맘이었던 나는 책을 읽어주는 잠자리 독서시간이 그렇게 졸릴 수 없었다.


누워서 책을 읽어주던 나는 수도 없이 읽던 책을 얼굴에 떨어트렸으며 내가 읽고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비몽사몽 책을 읽어준 날도 수두룩하다. '그림책의 기절'과 함께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책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든 날이 루틴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욕구는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에 그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 힘겨웠던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만 뿐만 아니라 내 안의 내면아이까지 키울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그림책에는 세상의 많은 지식과 삶의 지혜들이 숨어있었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정말 도움 되는 교훈들이 들어있었다. 그림책 테라피 괜히 있는 말이 아니란 사실을 그때 나는 느끼게 됐다.


누구보다 말하는 속도가 느렸던 나는 아이들에게 읽어준 그림책 낭독으로 말을 빠르게 하는 능력을 키웠으며, 말을 전보다 훨씬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또한, 출근하는 나를 보고 가지 말라며 울고부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집을 나서던 내 처지가 처량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던 시절.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의 따뜻한 교훈은 마치 힘든 나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림책은 나의 외로웠던 내면을 토닥여주는 것처럼,

힘든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것처럼,

고난을 지혜롭게 대처해 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점점 나는 그림책의 매력에, 책에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덕분에 나는 10년 사이에 연간 70권 이상은 꾸준히 읽는 독서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잠자리 독서로 얻은 '그림책의 기적'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지금도 나와 신랑은 아이들을 위해 가끔 잠자리독서를 지속하고 있다. 아이들은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렇게 포근할 수 없나 보다.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느낌이 좋단다.


요즘 저녁시간 우리 집엔 참 흐뭇한 관경이 펼쳐지는데 나와 신랑이 해줬던 것처럼 한 명이 두 친구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관경이다. 읽어주는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잠자코 듣고 있는다.


책육아에 미친 나에겐 초등 고학년 시기.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 더, 수학문제 하나 더, 영어 듣기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욕심은 힘을 못쓴다. 초등학생 시절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다양한 영역의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독서에 조금 더 힘을 쓸 계획이다. 언젠간 아이들이 살아감에 있어 세상의 많은 지혜를 책에서 구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림책의 기절로 시작한 내 책육아에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중,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세계문학, 고전등을 함께 읽고 오순도순 모여 앉아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독서모임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지금 독서 모임 리더라는 것을 맡아 조금씩 연습 중이다.


내가 책과 사랑에 빠지게 도와준 아이들. '그림책의 기적', '소중한 세 쌍둥이' 아이들이 없었다는 나는 아마 세상을 빈 껍데기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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