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 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스물여덟, 준비 하나 없이 세쌍둥이 엄마가 되다

by 세쌍둥이 엄마

저는 스물여덟 살, 인생에 그 어떤 준비도 없이

정말 말 그대로 무대뽀 정신 하나로

세아이의 엄마가 된 사람입니다.


육아가 뭔지, 아이가 어떻게 우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육아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기 셋은

제게 그저 난수표 같은 존재였고,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넘기고,
잠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에서

내 뜻대로 되는 건 단 한 가지도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울증이라는

불청객이 제 마음에 제집처럼 들어와 앉았습니다.


가장 어두웠던 생각들


그때의 저는 무서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때문이었어요.


“올가미는 어떻게 만드는 거지?”
“여기서 뛰어내리면… 끝일까?”


문장으로 적으니 너무 선명하지만,

그땐 이런 생각들이 가벼운 공기처럼 스윽 지나갔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조차 모를 만큼 마음이

무뎌져 있었어요.


어느 날은 깨닫게 되었죠.
‘이러다 정말 내가 죽겠다.’
그래서 결국 심리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상담사가 해준 ‘단 한 가지’


그날 상담사 선생님이 제게 해준 조언은

정말 단순했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저를 살렸습니다.


“정수리에 햇빛을 받아보세요.”


그 말 한마디였어요.


처음엔 솔직히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울하면 뛰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우울증이 오면요…


뛰는 건커녕 걷는 것조차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씻는 것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은 ‘뛰기’도 ‘걷기’도 아닌 ‘받기’를 제안한 거죠.


정수리에 햇빛을 받기.


햇빛 하나가 나를 조금씩 살렸다


저는 머리를 감지 못한 날에도

모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들 산책시킨다는

명목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갔어요.


햇볕이 쨍쨍한 날,
정수리에 따스한 빛이 톡

내려앉는 느낌을 의식하며 걸었습니다.


그 순간들이 신기하게도

짧은 숨구멍처럼 저를 살렸습니다.


빛이 들어오니 어둠이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
그 따뜻함이 제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느낌.
그게 제 우울의 터널을 조금씩 비집고 들어온 작은 희망이었습니다.


너무 무기력하다면, 그냥 ‘받기’만 하세요


걷기조차 힘든 날이 있죠.
문밖으로 나가는 게 세상의 가장 큰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산책도, 뛰기도 말고,

그냥 햇빛을 받기만 해보세요.


거실 창가 햇빛이 드는 곳에
등을 창문 쪽으로 돌리고
정수리에 햇살이 떨어지게 그대로 앉아 있는 겁니다.


몇 분만 그렇게 있어도
마음속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터널을 지나고 있는 당신께


혹시 지금
삶이 너무 무겁고
마음이 너무 어둡고
하루가 너무 버겁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예요.


정수리에 따스한 햇빛을 받아보세요.


큰 힘을 낼 필요 없습니다.
그냥 햇살이 내 정수리에 닿는 그 느낌을
잠깐이라도 허락해보세요.


그 작은 따스함이

당신의 아주 깊은 곳에서
조용히 무기력을 밀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날 한시에 태어난 세 아이가 알려준 인생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