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던 시절, 세 쌍둥이 엄마의 몸테크 기록
우리 부부는 시골 할머니들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 다니는
월급쟁이 부부입니다.
아이들이 없던 신혼 시절엔 참 신기했어요.
돈이 줄기는커녕 계속 불어났거든요.
특별히 잘 벌어서가 아니라,
그저 쓰는 돈이 적었을 뿐인데도 말이죠.
생활은 소박했고, 욕심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통장 숫자가 늘어나는 걸 보며
“이렇게 사는 거구나” 하고 감탄까지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의 신혼은 너무 짧았습니다.
세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모아둔 돈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표현,
그게 딱 맞는 시기였죠.
벌이는 그대로인데
나가는 돈은 감당이 안 될 만큼 늘어났고
매일매일이 허덕임의 연속이었어요.
저는 육아휴직을 3년이나 썼고
신입 딱지를 막 뗀 신랑은 점심을 굶어가며
돈을 악착같이 쓰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안쓰럽고, 또 대단한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우리는
조리원에 남들보다 일주일을 더 머물렀습니다.
십여 년도 지난 이야기지만
그 당시 조리원비만 3주에 600만 원이 넘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고된 생활.
남편의 월급은 한정적이었고
육아휴직 수당은 솔직히 말해 너무 비루했죠.
아이 셋을 혼자 돌볼 수 없어서
가족이 도와준다 해도
사람 한 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결국 입주 도우미를 쓰게 됐어요.
세 쌍둥이를 봐줄 입주 도우미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고
비용은 한 달에 30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게다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입주 도우미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죠.
결국 밤낮 도우미를 따로 두게 됐고
야간 수당까지 붙으니
한 달 도우미 비용만 360만 원 정도가 나갔던 것 같아요.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기저귀, 분유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옷, 각종 용품들까지.
왜 그렇게 필요한 게 많은 건지요.
우리는 그렇게
생활비에 짓눌린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야’ 했습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이런 처지의 부부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이야기하고 싶어서예요.
이랬던 우리 부부가
어떻게 자산을 늘릴 수 있었는지,
조금은 궁상맞고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혹시 지금
“아무리 벌어도 남는 게 없다”라고
낙담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조금의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적어도 5년 이상,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시기를
지속해서 버텼습니다.
그래도 말이죠.
우리는 악착같이 아끼고
소박하게 살면서
자산을 꽤 많이 늘릴 수 있었어요.
제가 정의한 우리 집 재테크는
화려한 투자도, 대단한 정보도 아닌
그냥 ‘몸테크’였습니다.
사실 가장 큰 자산 증식의 계기는
다자녀 특공 청약 당첨이었어요.
그 집이 중심축이 되어준 건 맞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엔 너무 좁았고
결국 큰 수익을 보지 못한 채
집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청약으로 돈 벌었다”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정말
생활력으로 돈을 불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 학원비는 엄마표로 버텼습니다.
아이 셋의 학원비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잖아요.
일정한 수입 안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는
줄일 수 있는 것부터 줄이자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엄마표로 가보자, 였습니다.
독서 교육부터 시작했고
초등 저학년까지
엄마표로 대체 가능한 건
제가 직접 봐주기로 했어요.
특히 운동 학원.
가장 돈이 아깝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 운동 선생님이 되겠다고
스스로 나섰죠.
이렇게 시작한 절약이
쌓이고 쌓이니
생각보다 큰돈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커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지면서는
학원비의 마지노선을 정했어요.
엄마라면 모두 아시겠지만
자꾸만 추가하고 싶은 것이
아이들 학원입니다.
저는 그 유혹을 꾹꾹 눌러 참고
하나를 넣으면 하나를 빼는 방식으로
학원비의 마지노선을 지키도록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쉬워진 듯해요.
두 번째, 아이들 앞으로 들어온 돈은 절대 손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양가 부모님, 친척들로부터
아이들 앞으로 들어오는 용돈이 꽤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을 때는
나라에서 주는 수당도 쏠쏠했고요.
저는 그 돈을
단 한 푼도 생활비로 쓰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통장으로,
그리고 바로 저축과 투자로 연결했어요.
아이들 앞으로 들어온 돈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축과 투자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니
‘시간의 복리’라는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세 번째, 외식 대신 집밥이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정신 놓고 외식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시나요?
평소 잘 못 먹는 소고기라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먹고 오면
50만 원은 우습고,
분식만 먹어도
6~7만 원은 기본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간
정말 거덜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집밥에 올인하기로 했습니다.
질리지 않도록 식단을 짰고
“또 집밥이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 열정을 전부 집밥에 쏟아부었어요.
미식가인 신랑은 외식을 하고 싶어선지
“왜 그렇게 집밥에 집착하냐”라고
타박하기도 했지만
저는 살기 위해 더 단단해졌습니다.
이유식부터 지금까지,
1년, 2년,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돈을 아꼈어요.
네 번째, 옷과 물건은 아울렛과 중고거래였습니다.
백화점 키즈 브랜드 매장을
한 번이라도 돌아본 분이라면 아실 거예요.
가격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세 벌을 동시에 사야 하는 저는
백화점 브랜드는
아예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중고거래를 시작했고
한계가 느껴질 땐
아울렛을 파기 시작했어요.
아울렛도
어디가 진짜 싼 지
직접 다녀보며 골랐습니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곳을
단골 아울렛으로 정했고
해마다 두 계절 정도만 방문했어요.
한 번 갈 때 50만 원 정도로
최소 2년은 입히니
이것도 꽤 큰 절약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새는 구멍을 하나씩 막다 보니
어느 순간
조금씩 불어나 있는 자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재테크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최종 목표만큼은 분명해요.
메뉴판 가격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유.
그게 바로
세 쌍둥이를 키우는
월급쟁이 엄마인 제가
끝까지 가보고 싶은 지점입니다.
그러니 저처럼
벌이보다 지출이 많아
늘 고민만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줄일 수 있는 구멍부터 막아보시라고요.
물론
수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투자 역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장 삶이 버거운 시기에는
‘더 벌자’보다
‘덜 새게 하자’가
훨씬 현실적인 해답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희 부부도
한동안은 돈을 못 불린 게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지출을 들여다보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돈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길은
의외로 화려하지 않았어요.
특별한 정보도, 대단한 감각도 없이
그저 매달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이었죠.
지금 당장은
통장이 늘지 않는 것 같아도 괜찮아요.
오늘 막은 작은 구멍 하나가
몇 년 뒤에는
당신을 꽤 먼 곳까지 데려다 줄지도 모르니까요.
세 쌍둥이를 키우며 깨달은 건 이거예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
돈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이요.
오늘도 빠듯한 하루를 살아내고 계신
모든 월급쟁이 부모님들께
이 이야기가
작은 용기 하나쯤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