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촌뜨기 흙수저도 희망을 가지세요

“나는 대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거야”

by 세쌍둥이 엄마


저는 말 그대로 깡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고,

흙을 만지며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흙수저’라는 말이 이렇게 유행하기 전부터,

이미 저는 흙수저였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받은 교육이라고 해봐야
그냥 시골 학교에서의 수업이 전부였습니다.
교육 환경이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죠.
그래도 성실함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살던 ‘시’에서 가장 좋다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런데요, 막상 들어가 보니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는 뱀머리가 아니라, 용의 꼬리였더라고요.
이미 수준 차이는 너무 컸고,
그 격차를 따라잡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벅찼습니다.


그 시절, 저는 제 삶이 너무 싫었어요.
시골에서 자랐다는 사실도,
이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느낌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입에 달고 살던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꼭 대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거야.”


지금 돌아보면 참 막연한 말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하면서

대도시 라이프를 시작했고,
지금은 제 아이들도 서울에서 자라고 있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와 신분증을 복사하러 갔던 문구점에서
아저씨가 무심하게 던진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시골 아가씨가 출세했네.”


그 말이 벌써 십오 년도 더 지났는데,
이상하게도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정말로 저는,
제가 태어난 배경 안에서는

‘출세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니까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저는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을 하게 됐죠.
대학교 졸업 후 빚을 갚아 나가던 사람이
그 나이에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겠어요.


조금 더 모으고 결혼하면 좋았겠지만
몇 년간 회사 다니며 악착같이 모은
그 많지 않은 돈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생활이 늘 순탄했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전혀 아니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는 한 번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거든요.


남편이 마련해 온 돈으로
다행히 전세를 얻었고,
결혼하자마자 저는 3년이라는

긴 육아휴직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결혼생활.
돌이켜보면 참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외벌이로 3년,
월급쟁이 맞벌이로 9년.
알콩달콩이라기보다는
지지고 볶으며 버텨온 12년이었죠.


그런데요,
그 12년을 뒤돌아보니
우리는 꽤 경제적으로 성장해 있더라고요.
비루했던 제 결혼자금에서 시작해
자산이 거의 80배 가까이 늘어 있었습니다.

(너무나 비루해서 배수가 더 크게 느껴지네요)


물론 운도 작용했겠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돈이 없던 시골 촌뜨기의
그 악바리 같은 근성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나 하고요.


그래서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을 ‘흙수저’라고 부르는 분들,
“내가 과연 될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분들께요.


괜히 겁먹고
삶을 대충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산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인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비록 흙수저라 해도
희망을 놓지 말고,
목표를 가지고 삶을 대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골 촌뜨기였던 제가 해냈다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자신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혹시,
제가 자산을 80배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시다면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어볼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떠나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