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인연을 붙잡지 않게 된 순간, 마흔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들
마흔이라는 나이를 지나면서
저도 이제는 인연이라는 것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건
힘든 시기마다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인연이 다가오고,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인연은
꼭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세쌍둥이를 키우며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 시간 속에서
뼈저리게 느낀 경험 덕분입니다.
인연에도 시기가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하게 된 건
바로 세쌍둥이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 인연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연이더군요.
세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저는 ‘세쌍둥이 엄마들’의 모임을 알게 됐습니다.
크루라는 표현이 조금 웃기지만,
육아의 ‘육’ 자도 모르던 제가
난생처음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반드시 기대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은 처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곳에서 저는 큰 위로를 받았고,
공통의 관심사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육퇴 후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던 엄마들이 있었습니다.
서울, 부산, 울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만나보려고 애썼고,
그 힘들었던 시간을
서로에게 기대며 버텨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건
분명 그녀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아, 인연에도 시기가 있구나 하고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기더니
그렇게 가깝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서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연락이 끊겼습니다.
다시 이어보려 애써도
이미 어긋난 관계는
다시 합을 맞출 수 없더군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오는 인연은 반갑게 맞이하되,
그 시기를 충분히 살아내고
때가 오면 붙잡지 말아야 한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게 된 게요.
어떤 인연은
정말 죽을 것 같던 시기의 저를
살려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늘에서 보내준 수호천사 같던 인연들이
제 삶 곳곳에 분명히 존재했더군요.
물론
저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인연도 있었지만,
그만큼
저를 살리고 성장시켜준 인연도
운명처럼 나타났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며
이제는 다가오는 인연과
떠나는 인연 앞에서
조금은 초연해진 것 같습니다.
함께여서 즐거웠던 인연은
그 시기를 더 잘 살아내게 도와준 인연이었기에,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놓아줘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우리가 떠나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 인연이
그 시기를 잘 건너기 위해
잠시 만나게 된 인연이고,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떠날 인연을 억지로 붙잡아 봤자
삐걱거리는 잡음만 남을 뿐이고,
누군가 떠난 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인이든, 친구든
떠나간 인연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분들께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그 인연은
당신을 슬프게 했을지언정,
분명 당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잠시 스쳐 간
아주 소중한 인연이었을 거라고요.
잡히지 않는 인연을 붙들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더 소중한 존재를 맞이할
마음의 자리를
조용히 비워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떠나간 인연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인연과 충분히 교감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열정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인연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