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탈 시간조차 부족했던 날들..
모유수유, 그게 뭔데?
나는 세 쌍둥이 엄마다. 모유를 직수로 물려본 것은 조리원을 끝으로 내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신생아에게 엄마의 초유가 그렇게 좋다지만 나는 그것마저 1/3씩 나눠줘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먹이지 못한 느낌이다.
모유 수유를 하면 엄마와의 유대관계가 좋아지고 서로 교감할 수 있어 좋다지만 나는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미숙아로 모유를 빠는 힘이 부족했고 나는 오로지 유축으로만 초유를 먹일 수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옛날 옛적에 태어났다면 아마 생을 이어가기 힘들었을 거다.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조리원에선 그래도 모유수유라는 것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쌍둥이 모유수유 자세를 시도해 본들 늘 한 명은 분유나 초유를 먹어야 했기에 모유수유를 했다고 할 수도 없다. 유축에 공을 들여야 했던 나는 조리원 생활부터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조리원을 퇴소한 날, 올 것이 왔다.
유축만이라도 할 수 있던 조리원 생활이 천국이었다는 것을 나는 퇴소 당일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육아전쟁이란 것을 맞이했다. 퇴소부터 만만치 않았다. 세 아이를 안고 와야할 어른이 한명 더 필요했고 운전해 줄 어른 역시 한 명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집으로 도착한 우리는 이유 모를 아이들의 울음에 혼비백산했다.
집에 온 첫날 나는 모유수유를 시도해 봤지만 곧 그 시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얼마를 먹는지도, 잘 먹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울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그저 소비할 수 없었고 유축이라도 한다 치면 양은 세 아이가 먹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유축에 필요한 시간을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에 써야 할 만큼 우리는 시간이란 녀석에 쫓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유축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젖몸살이란 것조차 모르게 모유는 말라버렸다. 젖 말리는 약조차 필요 없을 만큼 힘들지 않고 빠르게 모유를 끊을 수 있었다.
첫아이를 세 쌍둥이로 만나다 보니 출산 후 아쉬운 것이 몇 가지 있더라. 진통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던 것(어떤 이는 모르는 게 낫다고 한다)과 한 명의 아이를 달랑 안고 교감하며 모유수유를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아이만 옆에 꼭 끼고 모유수유하며 스르륵 잠을 청해 보는 것..
평범한 줄 알았던 내 삶엔 외이리도 예외가 많은 건지.. 가끔은 삶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악착같이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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