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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ji 린지 Jul 12. 2018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 ①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당신에게 들려주는 동화소설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 ①




이 작은 산에는 수종의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울창함을 이루고 있다. 평평한 땅이 어느 시점에 또 어떤 까닭으로 높이 솟아 푸른 생명을 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그들의 나무껍질 두께와 갈라진 흔적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떤 식물들은 생명이 다하여 썩어버린 나무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한 뿌리에서 두 생명이 자라나기도 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나무를 위해 자신에게 기생하는 것을 선뜻 허락해주는 나무도 있었다. 


느리지만 정확하고 풍요로웠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모든 것이 산의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넓은 나무들은 도토리를 만들었는데, 불쌍한 이 어린 떡갈나무 한그루는 수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제 몸에 도토리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나이가 그렇게 어리지도 않았다. 큰 나무들 사이로 동쪽 산등성이 아래를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컸으며 이제 줄기도 제법 짙은 회갈색을 띠게 되었으니까.

 

 도토리가 열리지 않는 어린 떡갈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눈을 뜬 (어린나무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그 시점을 비로소 눈을 떴다고 표현한다.) 한 그루의 어린 밤나무는 벌써 몇 해째 알이 꽉 찬 밤을 제 품에 가졌다. 

어린 떡갈나무는 그런 밤나무가 미웠다.


 어린 떡갈나무는 어린 밤나무가 지나치게 잘난 체를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라치면 그 잘난 밤이 가득 열린 가지를 일부러 슬쩍 흔들어서 밤이 떨어지게 만들고, 그 틈을 타 모여드는 다람쥐와 청설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것. 그것이 밤나무가 잘난 체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보란 듯이 말이다. 

 

 때문인지 어린 떡갈나무는 모든 것이 싫었다. 햇빛이 가득한 날은 눈이 부셔서 싫었고, (정확히 어디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 나무들은 눈이 있고 볼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잎사귀에 빗물이 닿는 것이 아파서 싫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은 간지러워서 싫었고, 줄기와 나뭇가지를 돌아다니는 다람쥐나 작은 벌레나 곤충 같은 것들은 귀찮아서 싫었다. 

 

 하지만 수 그루의 나이든 떡갈나무들과 함께 모여 지내는 어린 떡갈나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 떡갈나무들은 본디 조용하고 차분하며 점잖은 대화를 주로 나누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 해가 뜨기 바로 직전에 가장 수다스러웠으며 해가 온전히 떠오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졌다. 




 


그날도 그랬다. 해가 올라오기도 전 어스름한 빛이 아주 조금씩 번지는 그때,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하나둘씩 깨어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밤새 지렁이 한 마리가 내 북쪽 뿌리 끝을 간질이더군.” 


“그 지렁이가 지금은 내 남쪽 뿌리에 있는 것 같은 걸. 이곳에서 아마 제일 부지런한 녀석일 거야.”


“부지런한 거로는 저 청설모를 빼놓고 얘기하지 말게.”


“밤새 투닥거렸지.”


“밤새 도토리를 찾아 이 가지, 저 가지 뛰어다녔지.” 


“그건 도토리를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네. 그냥 심술을 부린 거지.”


“오늘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시원하게 물을 마신 기억이 오래되었군.”


“기억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 경험이 오래된 것이겠지.”


“물을 찾아 뿌리를 뻗칠 때 조심하라고. 내 것과 엉겨버리게 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나한테 말하는 건가?”


“모두에게 경고하는 거라네.” 


“앞으로 조심하겠네.”


“조심하겠네.”


 어린 떡갈나무는 그날도 언제나 그랬듯 나이든 떡갈나무들의 시끄러운 대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해가 완전히 뜰 때까지는 잠을 더 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바람결에 잔가지를 털며 잠을 쫓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직 날이 어두워 정말 아침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린 떡갈나무는 툴툴거리듯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때마침 마른 나뭇잎을 밟으며 후다닥 지나가는 다람쥐 덕분에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어린 떡갈나무의 버릇없는 말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찍 일어났구나. 정말 넌 부지런하고 자랑스러운 떡갈나무구나.” 


“그럼, 어린것이 정말 부지런하지. 나이든 우리만큼이나 늘 일찍 일어난다니까.” 


“우린 오랫동안 아침에 잠을 잘 수가 없었지.” 


“맞아.”


“나이가 들면 그래. 새벽바람에 줄기가 따갑고 뿌리가 아프지.”


“생각이 많아져서 잠이 오지 않아.”


“그건 떡갈나무들의 특징일세. 그 어떤 나무도 떡갈나무만큼 생각이 깊지 않지.”


“깊다는 것과 많다는 것은 다르다네.”


“우린 많기도 하고 깊기도 하지.” 


 어린 떡갈나무는 슬쩍 시선을 돌려 산등성이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잠을 자는 밤나무들이 있었다. 어린 밤나무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어린 밤나무만 열매를 계속 맺고 자신은 한 번도 그러하지 못한 탓이 어쩌면 밤잠을 푹 잘 수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어린 떡갈나무는 생각했다. 같은 흙에서 태어나 매번 같은 비와 햇빛을 맞으며 자라나는데도 자신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다.  



‘단 한 번만 도토리를 만들어 볼 수 있다면’


어린 떡갈나무는 자신의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도토리를 상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린 밤나무가 자신을 부러워하겠지. 그리고서 어린 밤나무는 이렇게 물어볼 거야.


“얘, 어린 떡갈나무야. 어떻게 해야 너처럼 알알이 꽉 차고 풍성한 열매를 가질 수 있는 거야? 응?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처럼 되는 거야?”


그럼 어린 떡갈나무는 이렇게 대답할 참이었다.


“별다른 비결은 없어. 그저 참고 기다리는 것뿐.”


“얼마 동안?”


“수년하고 수개월이지. 나는 그렇게 기다렸지.”


“와. 너는 정말 인내심이 대단하구나.”


“도토리가 없던 시절에도 난 포기하지 않았지.”


“넌 정말 대단하구나.”


어린 떡갈나무는 상상만으로도 나뭇가지가 으쓱거렸다.


“얘, 어린 떡갈나무야.”


그때, 어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쪽은 어린 떡갈나무의 밑동 쪽이었다. 









[2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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