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TO DO LIST'

마르지 않는 샘물

by 안미쌤

남편은 해야 할 일들을 'TO DO' 어플에 기록하며 '도장 깨기'하듯 하나하나 처리해 나간다.


그런데 매일매일 정말 열심히 처리하는데도 지금 'TO DO LIST'는 112개다.

(나도 볼 수 있도록 공유되어 있다.)


줄었다가도 다시 100개, 줄었다가도 다시 100개 초과.


지난 주말에 남편은 갑자기 즐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는 이 목록이 50개 정도일 때, 너무 일에 지쳐있을 때라 정말 하기 싫었는데, 다시 기운 차리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니까, 100개가 넘어가도 이제는 괜찮아~"라고.

나름 즐거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거기다 대고, "'TO DO LIST'가 '돈'이었으면 좋겠네~"라는 농담을 던졌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돈' 얼마나 좋은가.


처리하면 쌓이고, 처리하면 쌓이는 일거리처럼.

쓰면 쌓이고, 쓰면 쌓이는 돈.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남(편)이 해야 할 일이지만, 내가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나까지 답답해질 것 같아 한번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이 112개의 일거리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직원', 당신은 '원장'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나도 모르게 모른척하고 있었다.


모르고 싶었기에.


남편은 그런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대놓고 일을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눈치도 주지 않았다.


그런 남편에게 고마웠다.

엄마가 심부름 안 시킨다고 좋아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친구를 만나고 들어온 어느 날, 남편이 tv를 보다 잠들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일어나지도 않네?"라는 섭섭함도 잠시,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힘들고 지친 얼굴.

깨우기에도 미안한 피곤한 얼굴.


사실 그날 처음 본 건 아니다. 그냥 모른척했다.

나도 지치고 힘들다며 외면했다.

남편의 힘듦까지 내가 떠안기에는 나도 지금 힘들다는 핑계로.


나는 정말 이기적이었다.




모든 짐을 남편에게 떠 맡기고, 나는 가벼운 두 손으로 타자를 치며 힐링 중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남편은 그런 나를 항상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준다.


"너만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전 글에서 남편을 "T"의 전형적인 인간으로 표현했지만, 공감이 안 되는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지 않을 뿐, 따뜻한 남자입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건가?


어제 퇴근할 때 남편의 한마디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오늘 너무 힘들고, 지친다."


그냥 허공에 대고 한 말이지만, 나에게 그대로 날아와 꽂혔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당신의 입에서 "행복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해 주겠다고.


그리고, 이제 모든 짐은 나와 같이 나눠 들자고.


행복하자 우리 모두 :)

keyword
작가의 이전글ENFP와 ISTJ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