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매너
나는 출근할 때 항상 올림픽대로를 탄다.
음악을 들으며, 혹은 라디오를 들으며 올림픽대로를 타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즐거움이 못마땅하기라도 한 듯 그 짧은 시간에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차.
저 멀리서 부웅 속도를 내며 칼치기를 하는 차.
도시고속도로 출구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서있는 차들 앞으로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는 차.
등등등.
평소 '화'가 많은 나는 깜짝 놀람과 동시에 "목숨이 2개냐!!!" 혹은 "다들 기다리는데 거 너무한 거 아니오!!"라고 허공에 소리를 치지만, 사실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가버린 것을. 들리지도 않을 것을.
그래도 내 속이라도 시원하자고 소리를 치지만, 내 기분만 나빠질 뿐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최근에는 어느 연예인의 인생관에 관한 한 짤을 봤는데, 운전할 때 상대방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면 듣는 나만 기분이 나빠지기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그 감정을 온전히 내가 감당했기에 무슨 말인지 충분히 공감했고, 그 이후로 10번 화낼 거, 7번으로는 줄인 것 같다. (그 정도면 안 줄인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셔도 저는 많이 줄인 겁니다.ㅎㅎ)
토요일도 출근을 하는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올림픽대로를 탔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고속도로출구로 빠지기 위해 줄을 서서 천천히 가고 있던 그때, 시뻘건 차 한 대가 내 앞에 끼어들었다.
평소에 그 장소에서 끼어드는 차가 많기도 했고,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을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선에서 끼어든 건 아니었기에.
나름 실선 직전, 점선에서 '세이프!'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끼어듦과 동시에 비상깜빡이가 '반짝반짝' 하며 나에게 정중한 사과를 하기에 '오~ 매너 있다!' 하는 찰나, 창문으로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 뭐지??'
운전자는 왼팔을 하늘 높게 쑥 뻗더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세 번 인사를 했다.
당황한 나는 '먼 일이 있나? 뒤에 같이 오는 차에게 보는 신호인가? 누가 또 끼나?' 하면서 두리번두리번 안절부절못하다가, 남편에게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야??"하고 물었다.
남편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음.. 끼어들었는데, 바로 앞에 실선인 걸 알고 더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뒤에 차들이 많이 서있으니까, 다 볼 수 있게 인사한 듯?"이라고 했다.
"우와~~ 매너 쩐다!!"
너무 감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애들 같은 말투가 튀어나와 버렸다.
처음 받아보는 인사에 많이 어색했다.
평소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놀란 내가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겨우 양보를 해주면, 끼어든 차는 본인이 운전을 잘해서 끼어들었다고 생각하여 인사도 없이 가는 경우가 꽤 많았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 역시도 내가 운전이 늘어 잘 끼는 줄 착각한 시절이 있었다.)
비상깜빡이 인사라도 받으면 그나마 '욱'하던 화가 쑤욱 내려갔었는데, 오늘은 '손 인사'라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인사가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칠어진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것을 보는 게 어렵지 않으며, 도로 위 까만 선팅창에 숨어 가속, 음주, 신호위반 등의 거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자주 마주치게 된다.
혹은 저런 사람들을 봤을 때, 나 역시도 나를 모른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비판했다.
나를 놀라게 한 운전자 뒤에 대고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른 행동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도로 위에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불편함을 주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진심으로 미안함 혹은 고마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편함을 준지도 몰랐겠지.'
오늘 빨간 자동차의 운전자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사가 놀랍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냥 단지 나에게 '어색한 인사'로 다가왔을 뿐.
오늘 그 인사는 나에게 어색했지만, 그 어색한 인사가 자연스러운 날이 올 수 있도록 오늘부터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깜빡깜빡)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깜빡깜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