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내며.
08.15~08.18
나의 30대 마지막 여름휴가였다.
(새로운 한국나이로 하면 1년 더 남긴 했지만..)
사실 30대 마지막이라는 것도 글을 쓰는 지금 생각났다.
글을 쓰려다 보니 생각을 하게 됐고, 생각을 하다 보니 내년에 40살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 이후, 휴가 때 여행을 간 적이 없다.
결혼 초반에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나는 그냥 집에서 잉여처럼 쉬기 바빴다.
그다음 몇 년은 멀어서 자주 못 뵈는 시부모님을 만나러 시댁에 갔다.
시댁에 가자고 하는 건 오로지 나의 의견이고, 나는 시댁이 편해서 가는 길이 여행처럼 설레는 사람이기에 몇 년은 그렇게 시댁으로 내려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일이 생겨 그나마 가려 했던 여행을 취소했고, 이후 다시 시도했지만 갑작스러운 나롱이의 응급상황으로 그마저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휴가.
나롱이의 컨디션이 1순위인 상황이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해도 '강아지 해변'이 있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가보려고 했다. 그게 유일한 우리 세 가족의 휴가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기 전 날 밤.
나롱이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한쪽 눈에 경련이 조금씩 있었고, 갑자기 설사를 계속했으며, 한쪽 다리마저 경련이 조금씩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응급상황은 아니라는 말에 안도는 했지만 기운 없이 축 쳐져있는 나롱이를 데리고 놀러 가자니 내 욕심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속으로 '내가 팔자에 무슨 바다냐~'하며 '나는 당일치기도 사치인 건가'하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그래도 그다음 날 컨디션이 좀 나아진 나롱이와 함께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별다방에 가서 조금 콧바람을 쐬었으며, 부모님 집에 가서 삼겹살 파티도 했고, 마지막 날은 단골 카페에 오랜만에 세 가족이 가서 디저트와 함께 커피도 한잔씩 때렸다.
그렇게 내 30대 마지막 여름휴가는 여느 주말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 무언가 찝찝함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바다를 못 간 게 찝찝한 건지.
더 신나게 놀지 못해서 찝찝한 건지.
옷방 정리를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하지 못한 게 찝찝한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볼 일 보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다.
남들처럼 여행을 가지 못해서?
남들이 "휴가 때 어디가?~"라고 하는 말에 시원히 답변을 하지 못해서?
4일이라는 긴 시간을 그냥 휴지통에 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 정리가 될까?' 해서 쓰기 시작했지만, 쓰면서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결론도 나지를 않는다.
그냥 휴가 이후 찝찝해진 이 기분을 글로 털어버리면, 이 글을 읽은 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그럼 나만 이 세상과 너무 동 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고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위로가 될지도 의문이긴 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도, 온 세상이 다 즐기는 시즌이 오면 참 힘들다.
무리에 합류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미운오리새끼 같달까.
이러한 감정들도 스스로가 만드는 우울함일 뿐이기에, 휴가 기간 중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던 시간은 없었는지 다시 되감기를 해봤다.
나롱이와 함께 보낸 시간들도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이었지만, 문득 어젯밤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에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이번 겨울 휴가부터는 우리나라부터 '도장 깨기' 해보자!"
전국에 우리 발자국을 남기자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이야기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안 그래도 '전국지도' 주문했어~ 뭔가 통했다! 가고 싶은 곳 표시해 두고 가보자."라고 화답했다.
뭔가 통했다는 생각에 우리 둘은 서로를 보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서 '행복'을 느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각자 기준이 있음에도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타인들에 의해 행복의 기준이 흔들리기도 한다.
내가 평범하다고 느끼는, 혹은 불행하다고 까지 느끼는 이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하루일 수도 있는데, 나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내 행복을 낮게 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다음 휴가가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인생은 원래 '무계획'아니던가.
당장 5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삶인데, 지금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면 '소소한 행복'은 언제든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To. 나의 30대 마지막 여름휴가에게
안녕?
사실 여행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네가 온다는 게 미웠어.
그래도 나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긴 하니까 반갑기도 했지.
역시나 크게 신나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행복을 준 너에게 지금은 고마워.
다시는 못 올 시간이기에 더 소중한 4일을 보낸 것 같아.
덕분에 혹시 이 여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나롱이와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물론, 내 게으름으로 더 많은 걸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네가 없었다면 그 마저도 나롱이에게 해주지 못했을 거야.
우리는 이제 헤어지지만, 40대에 만날 또 다른 너를 기다리며 열심히 살고 있을게.
그때는 더 큰 행복을 갖고 찾아와 주길 바래.
잘 가. 덕분에 잘 쉬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