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에서 300자
엄마는 내 뮤즈다. 가끔 자소서를 쓰다가 막히면 엄마한테 다가가 생각이 안난다며 한껏 투정을 부리곤 한다. 잠잠히 듣던 엄마가 “너 그때 했던건 뭐야?” 라고 되물으면 그제서야 “아 맞다!” 하고 소재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 후로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나면 생각정리가 되서 글이 잘써진다. 물론 서류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았지만, 나라는 인간을 파악해 가는 길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기분이 든다.
근데 생각해보면 뮤즈라는 엄마에게 나는 착한 딸은 아닌 것 같다. 보통 30분을 이야기하면 비율은 내가 25분, 엄마가 5분 정도로, 말하다 소재가 떠오르면 “어 생각났다. 고마워 나 가서 쓸게!”하고 방으로 곧장 들어간다. 엄마가 내 조언을 물으러 슬며시 방문을 열면 “지금 바쁜데..”하고 거절도 자주한다.
집에 집전화가 없어지는게 일반적인 요즘 시대에 우리집은 집전화기가 먼지 쌓인 채로 아직도 있다. 가끔 엄마는 전화기를 물끄러미 본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를 한다. “옛날엔 이 전화기로 1시간 2시간 할머니랑 통화도 하고 그랬는데…” 그리고 집전화를 보면 할머니한테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진다고도.
엄마는 다 그런가보다. 말하기보단 듣는게 익숙한, 자식의 고민 앞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기꺼이 삼키는. 그리고 모든 생각을 가장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할머니도 엄마의 뮤즈였을 테다. 취준만 끝나면 엄마한테 잘해줘야지 하곤 했는데, 진짜 잘하는건 사실 어려운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엄마의 이야기를 꼭 들어줘야겠다.
이 시를 읽고 뭘 하는지 하루종일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의 고민을 외면했던 숱한 날들이 생각나 적어봤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 시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