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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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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복 Dec 08. 2020

AI 냉장고가 당신 주변 인간쓰레기들을 감별해 준다면?

MBC 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나는 팰리컨 전자의 혁신 개발팀 과장 대행으로 뼈빠지는 일개미 서지성이다.

우리 팀은 최근에 음성인식 스마트 가전 AI 냉장고 ‘장고’를 개발 중인데

장고가 무엇이냐 하면, 행동과 소비패턴을 읽고 이것을 카테고리화해서 각자 컨디션에 최적화된 식사 메뉴를 추천해 주는 전지전능 냉장고다.

장고에게 사용자 성별 나이 특이사항, 전에 먹은 메뉴 등을 입력하면 다음 끼에 최적화된 메뉴를 추천해 준다. 가 원래 내가 원하는 기능이지만

우리 불쌍한 장고는 동문서답에 냉장고 안에 있는 계란 세는데도 오억 년이 걸린다.

이런 장고 덕에 개발자인 나는 오늘도 야근 행이었다.


사실 나에겐 곧 결혼할 치과의사 남자친구가 있다.

근데 좀… 나를 대하는 게 매우 싸하다…

어쨌든 나는 개발자니까 우리의 노답 장고의 버그를 해결해 보려다가 그만 과부하로 불까지 나버렸다…


되는 일도 없는데 그 와중에 나를 찾아온 남친은 나한테 “이제 결혼하면 하고 싶은 거 못하니까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둥의 말을 뱉는다…

그렇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다시 야근을 하러 돌아와 불에서 건진 장고 부품들을 다시 조립했다.


근데 이거 뭔 일인지; 갑자기 장고가 조상신이 내렸는지 내가 넣지도 않은 인적 사항 데이터까지 술술 뱉으면서 메뉴 추천에 성공했다.

내가 입력 사항에 우리 꼰대 이름은 말 안 했는데?라고 의문이 생겼는데 갑자기 장고가 꼰대 부장이 법인카드로 호텔을 결제한 내역까지 술술 불었다.

조상신이 내린 걸까 아니면 그냥 예기치 못한 버그인 걸까?

그런데 다음날은 더 황당했다.

장고가 내 친구 예슬이와의 통화를 듣더니 마음대로 예슬이의 똥차 남친의 자산이며 신상을 술술 읊었다…

알고 보니까 정말로 내 친구의 남친은 정말 인간쓰레기 사기꾼이었다. 장고는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


그리고 이번엔 내 남친의 인적 사항으로 장고를 테스트해봤다.

그런데 저번 부장 때처럼 장고가 내 남친의 결제 내역들을 다 조사하곤 노래방과 술집 등 유흥업소에서 결제한 내역들을 보여주는 거다…

그리곤 내 남자친구가 친구들과의 단체 메시지방에서 친구들에게 보낸 나에 대한 성희롱적 메시지와 내 집 cctv를 몰래 찍은 내 몸 사진까지… 장고가 찾아서 보여줬다.

갑작스러운 이런 상황에 곧 결혼식인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다.


장고는 나도 모르게 만든 핵폭탄일까?

아니면 어쩌면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조상신(JSS)인 걸까…?



요즘 많은 젠더 이슈들과 성범죄들이 공론화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범죄들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또한 최근 n번방 사건을 통해 이 피해자들은 나의 지인, 나의 가족,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4차 산업 혁명의 빅데이터로

남자들의 신상 정보를 낱낱이 파헤쳐 주는 AI가 어쩌면

이 시대의 여성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조상신이지 않을까?



이 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는 결국엔 로맨스 드라마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저번에 만난 남자친구가 똥차였지만 다음 남자친구가

똥차가 아닐 거라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극 중에서처럼 우리의 장고, JSS 조상신이 있다면 어떨까?

이 드라마에서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상처받아 파혼한 여자주인공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또한 여자 주인공의 주변인들에게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인간 됨을 여주인공은 장고를 통해 됨됨이를 파악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직 AI를 통해 개개인의 사생활을 알아내고

사생활이 담긴 데이터를 극 중만큼 수집하기는 불가능하다.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해도 엄청난 사생활 침해 논란과 AI로 사람의 인성을 파악한다,

흑백논리 등의 논란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드라마라면.

이러한 AI 장고의 도움을 받아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결국엔 로맨스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는 드라마다.

AI이며 그 AI의 평가에서 살아남는 새 인연이 과연 많을지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극중 초반이기에 정확히 알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AI의 시대는 멀지 않았고 데이트 폭력, 성범죄 등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두 가지만 보아도 이 드라마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이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결국엔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볼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성희롱이 담긴 주변인들의 카톡, 익명성 뒤에 숨어 남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퍼트리는 지인들,

자신의 자식이 벌인 성범죄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이 모두가 마냥 드라마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는 현실의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담은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서 마냥 픽션처럼 다루는 에피소드들이

누군가에겐 현실임을 생각하면서 시청한다면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현실의 장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종종 다큐멘터리를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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