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밤은 바쁜 일상을 한 편에 접어두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밤이란 털어내지 못한 미련과 걱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열정을 바치며 일하는, 그래서 한낮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감도는 시간이다. 밤은 저마다의 상황과 감정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지닌다. 밤은 그래서 특별한 시간이다.
음악은 밤을 함께 하기에 참 좋은 친구다. 졸음을 떨치기 위해서, 흥을 돋우기 위해서,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무언가 필요해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음악과 함께 밤을 보내고는 한다. MBC의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국, ‘FM4U’에도 밤의 정취 속에서 우리의 귀를 두드리는 프로그램들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꽤 오랜 시간 청취자들의 곁을 지켜온 프로그램도 있고, 그리고 최근 개편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프로그램도 보인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라디오 편성표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음악 전문 심야 라디오 3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때로는 B급이더매력적인법이다, ‘배순탁의B side’
혜성처럼 등장한 신규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A면의 히트곡보다는 그 너머에 숨겨져 있는 B면에 주목하겠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음악 전문작가로 활약했던 신입 DJ 배순탁이 구성과 진행을 맡았다. ‘음악캠프’가 A라면 ‘B side’에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B를 조명하겠다는 DJ의 각오처럼, 지금까지의 선곡표는 꽤나 독특한 구성으로 채워져 있었다. 에픽하이의 ‘신발장’ 앨범 수록곡 중에서 타이틀곡인 ‘헤픈엔딩’이나 ‘스포일러’가 아닌, ‘AMOR FATI’를 들려준다. Radiohead의 ‘Creep’처럼 누구나 알 만한 노래들 사이에 Gracie Abrams처럼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싱어송라이터의 곡을 소개하기도 한다. 대중성을 놓지 않으면서도 마니아 층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적당한 균형감이 돋보인다. 배순탁 DJ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레퍼토리로 유명한 내공 있는 음악인인 만큼, 앞으로의 선곡도 기대가 된다. '비-멘!'
이미지 출처: MBC
그저팝과함께라면아름다운밤, ‘신혜림의 JUST POP’
B side가 숨겨진 보석 같은 음악을 발굴해낸다는 취지 하에 장르 불문 다채로운 선곡을 선보인다면, ‘신혜림의 JUST POP’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팝 장르의 음악만을 깊이 있게 다룬다. 비유하자면 한 길만 꿋꿋이 걸어가고자 하는 소신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낮 시간에 송출되는 프로그램 중 마찬가지로 팝 장르 중심의 선곡을 하는 ‘김현철의 골든디스크’도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신혜림 DJ는 ‘골든디스크’의 음악 작가이기도 하셨다. 두 프로그램을 비교하자면, ‘골든디스크’ 김현철이라는 유명 DJ의 존재감에 더해 조금은 산뜻한 분위기가 돋보인다면 심야 라디오인 ‘신혜림의 JUST POP’은 음악 자체가 지닌 매력을 전달하는 데에 조금 더 힘을 싣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매력을 전달하는 DJ의 진심과 온도가 담긴 목소리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찾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이미지 출처: MBC
꿈보다달콤한영화음악이야기, ‘FM영화음악김세윤입니다’
MBC 라디오 편성표의 끝단에 위치하고 있는 고요하지만 강한 프로그램 ‘FM 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사실 MBC 라디오에서 ‘FM영화음악’의 명맥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편성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프로그램이 영화음악이라는 개성이 강한 장르를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예술은 본디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매개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오전 3시,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은 때에 영화음악을 들으며 잠에 들면,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영화음악의 향연 속에서 더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가 청취자를 잠에 빠지게 만드는 지루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특히나 주말의 특별 코너인 ‘매직아워 스페셜’의 경우 매번 감고 있던 눈도 뜨게 하는 흥미로운 주제로 펼치는 스토리텔링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배우나 감독의 이름이 제목인 영화’, ‘영화 속 락 페스티벌’ 등 예측 불가한 주제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게 이 코너의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직아워 스페셜 M’의 한 갈래로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들어서 세계속으로’라는 코너를 가장 좋아하는데, 언젠가 같은 제목의 TV 프로그램으로 각색되어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