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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un 10. 2022

왜 프랑스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까.

마스크 착용으로 본 한국 VS 프랑스

마스크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 지 2년 반, 


한국에서는 5월부터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마스크 의무 규정이 풀렸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 마스크를 벗기에는 감염자 수가 크게 줄지 않고 있어서일까. 여름이 다가오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날씨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고역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 주위에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대부분 한 번쯤은 코로나에 걸렸다. 지독하게 걸려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는 한편, 가볍게 지나간 사람들도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됐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항상 마스크를 쓰고 사람 많은 곳은 피하며 손도 자주 씻었다. 이 바이러스는 그들에게 어떻게 감염된 걸까. 감염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생활했는데 감염이 됐다면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비해 바이러스가 몇 차례 변이되어 전염 속도는 빨라졌지만, 증상은 약해지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정말 감염되기 싫은 것이다.




반면 프랑스는 이미 밖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한 지 오래고, 프랑스 정부는 5월 18일부터는 실내 및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해제시켰다. 단지 권고할 뿐이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당일, 프랑스인들은 거의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눈에 띌 정도였다. 나는 이 상황이 참 흥미로웠다. 한국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지됐음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시선이 갈 정도이니 말이다. 


며칠 전 나는 한국어 수업을 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설마 했지만, 역시 버스 안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나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코로나를 생각하면 감염될까 염려도 되지만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니, 너무 홀가분했다. 마치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나온 듯한 홀가분일까.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인지. 이상하게 코로나 위험은 크게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왜 두 나라의 성향이 이렇게나 다를까? 한국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쓰고, 프랑스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아무도 쓰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현재' 나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미래에 편하게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참고 자제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적으로 산다. 또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나 또한 남에게서 피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프랑스 사람들의 경우, '지금' '현재'가 삶에서 중요하다. 타인에게 조금은 피해가 갈지라도 '나 자신=개인’이 우선이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생각은 한국보다는 덜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이 덜 하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듯하다. 타인의 시선은 그다음이다. 프랑스인들도 한국인과 같이 하루를 열정적으로 산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 에너지 방향은 '현재를 즐기는 나'인 반면, 한국은 '미래의 나'로 향해 있다.


한국은 역사상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70-80년대 급성장 시대를 지나 부모 세대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한국은 문화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수직성장보다는 서로를 연결하는 조화로운 수평 성장이 필요할 시기이다. 인종차별로 인한 혐오와 폭력이 인종에서 국가, 회사, 가족, 개인 취향, 성격, 성별에 이르기까지 더 세밀하게 다양한 이슈로 발생하고 있다.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렸으니 이제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고 서로에게 다리를 놓아 건너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 개인의 삶이 단단하고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다리가 흔들지 않고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으니 말이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춰 사는 게 삶이 더 충만할까. 각자 개인의 취향이지만 나는 현재를 즐기며, 되도록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다. 어디까지나 희망일 뿐이라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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