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프랑스인이세요?"
내가 사는 베르사유 동네는 여름이면 거주민들보다 관광객들을 거리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지방으로 바캉스를 떠나고 여행객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베르사유의 Saint-Louis 거리의 한 단골 커피숍,
나는 해가 잘 드는 커피숍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 노트북 배경 화면처럼 매일 보는 풍경이라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보며 나도 낯선 눈길로 주변을 살펴본다.
잠시 잊고 있던 내가 살고 있는 '장소'를 문득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해가 질 무렵, 나는 커피숍에서 나왔다. 어둠을 준비하는 거리의 가로등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며 불빛을 내고 있었고, 레스토랑들도 빛을 내며 저녁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지만 프랑스인이세요?"
(Excusez-moi, vous êtes française?)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 말고는 사람이 없었고 그 여자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보통 길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면, 대화는 아래와 같이 흘러간다.
"니하오, 중국이세요?"
"아니요"
"곤니치와"
"아니요. 저 일본인 아니에요."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인이에요"
한국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가, 북쪽에서 왔어요? 남쪽에서 왔어요? 까지,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이 프랑스 여자분이 나에게 질문한 것임을 깨닫고 대답했다.
"아, 아니요."
"그런데 왜요?"
그 여자분은 내가 프랑스어로 대답하자. 다시 물었다.
"아 프랑스어 할 줄 알아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여기 근처에 큰 마트가 있는지 아나요?"
알고 보니 베르사유에 여행하러 온 프랑스 여자였다. 나는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여기 산다고 얘기하며 근처 마트 위치를 알려줬다. 그리고 그녀는 고마워하며 떠났다.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걷다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거리 상점에 비추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프랑스인처럼 보였나? 누가 봐도 아시아인인데..'
'여기에 오래 살다 보니 프랑스 사람들의 분위기와 비슷해진 걸까?'
사실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원체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겉모습(인종)이 다르더라도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그러나 한국은 어떨까? 길을 가다 겉모습(인종)이 다른 사람에게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볼 수 있을까?
한국 사람처럼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한국에 거주한 지도 20년이 넘어가는 최근 국적을 바꾼 일리야 씨를 보더라도 방송인이 아니었다면 우린 길을 가다가 한국어로 그에게 길을 물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고난과 시련을 함께 이겨낸 '한민족'으로 결속력, 정체성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라고 느끼는 울타리는 상대적으로 좁다. 한국도 점점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은 그들을 받아들일 사회적 제도나 인식이 부족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면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종과 국적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인종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어떤 인종의 부모에게 태어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적은 나의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가끔 한국 친구들과 어떤 이슈에 관해 토론하다 보면, 한국 사람의 생각보다 오히려 프랑스인의 생각과 같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프랑스인은 아니다. 단지 생각하는 회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치관이 프랑스와 잘 맞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프랑스에 잘 스며 들여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한국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껄껄대는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지극히 한국인이다. 정서적으로 더 깊게 공감하게 된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무척이나 즐겁고 소중하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공허한 부분이 완벽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인종, 국가도 큰 범위에서 문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 연결된 집단 정체성은 강력하지만,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양한 프레임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자신에게 맞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