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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13. 2022

나는 이제 앞만 보고 간다.

살아 있다는 건, Il suffit de s'avancer

앞만 보고 간다는 건, 무엇일까. 어디에서 나오는 용기일까. 


며칠 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Manon에게 전화가 왔다.


"Anna, 나는 이제 앞만 보고 간다."


5년 넘게 일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친구에게 나온 말이었다. 작년에 귀여운 남자아이도 낳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한걸음 발을 디뎠다.


앞만 보고 간다는 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두렵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으로 앞으로 나가겠다는 용기이다.


그렇게 그녀는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로 페이지를 넘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당시에 연극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무더위 시작을 알리는 매미 소리가 배경음악을 차지하는 한 여름, 연극부 친구들과 괴산 쌍곡계곡으로 놀러 갔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나를 포함하여 여자 넷에 남자 셋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물이 좋은 길목에 돗자리를 펴고 텐트를 쳤다. 수박도 차가운 계곡물에 담가 놓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와는 달리 계곡물은 맑고 투명해서 마음마저 시원해졌다. 먼저 남자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수영하며 놀기 시작했고 여자아이들도 살짝씩 차가운 계곡물을 몸에 묻히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천천히 물이 얕은 곳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하이틴 만화나 영화에서 볼법한 생기 넘치는 10대들의 모습이었다. 


한참을 놀다 지쳤는지 몇몇이 물속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나도 슬슬 배가 고파져 물속에서 나오려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르륵


그때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서 깊은 물 속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나는 근처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바위를 찾으려 발버둥 쳤다. 점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어, 정말?' 

'나 물에 빠진 건가?'


나는 물속에서 나오려 손과 발을 허우적거렸다. 조용했다. 계속 무언가가 밑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잡히지 않으려 더욱더 발을 힘껏 차며 뿌리쳤다. 무서웠다. 내 마음속은 두려움에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없이 밑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친구들은 왜 나를 찾지 않지?'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와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죽으면 너무 허무하잖아, '


나는 이런 순간에도 나의 죽음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떠올랐다.


<수영을 못해서 물에 빠져 죽은 anna>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갔다 익사한 여고생>


그렇게 사람들에겐 나의 죽음이 뻔한 여름의 한 뉴스로 지나갈 것이다.

억울한 느낌까지 들었다. 중력을 거슬러 물속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하찮고 초라했다. 

그 순간, 오른쪽 발에 무언가가 밟혔다. 


'하앗'


나는 힘껏 발길질하며 물속에서 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 순간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졸졸졸

매애앰

재잘재잘


계곡 물소리와 친구들 목소리가 들렸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상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친구들이 나를 불렀다. 


"anna 수박 먹으러 와!"


그들은 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겐 단지 몇 분 흘러가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될까.'




그 후 3주 뒤 우연인지 학교에서 우리가 갔던 계곡 근처로 야영을 갔다. 그리고 첫날밤 담력 훈련으로 전 학년이 줄을 지어 조교와 함께 밤에 산을 탔다. 앞쪽에 먼저 출발한 반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는 뒤따라오는 뒤쪽 반까지 메아리가 울려 퍼지며 가슴 졸이게 했다. 


우리 반도 비명이 나던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연극부 친구들과 놀러 갔던 계곡 옆이었다. 우리를 인솔하는 조교는 그곳에서 한 이야기를 해줬다. 


"여러분, 저기 보이는 계곡, 큰 바위 보이시죠?" 저기서 많이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여기 계곡물은 얕은데 저 바위 옆만 깊어서 아이들이 잘못하다 물에 빠져 죽는 경우 많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저기에 빠지면 저 계곡 아래에서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발을 잡아당기며 못 나가게 한다고 해요."


"꺄!"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옆 짝꿍에게 달라붙어 팔짱을 꽉 꼈다. 나는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내가 딱 저곳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나도 저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의 지금까지 내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참,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의 순간이다.




나는 그때 함께 여행 갔던 연극부 친구들이랑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내가 만약 그때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친구들의 인생에 어떤 의미나 영향을 줬을까?


우리 가족은 평생 가슴 한편에 ‘나의 상실’을 생각할 것이다. 내 방, 내 물건, 내 사진을 보며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을 것이다.


가족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혈연이라는 끈끈함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의미가 크다. 직접적이다. 특히 부모는 나의 뿌리이고 나의 시작점이다. 부모가 없었다면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부모와의 관계는 조금 더 특별하다. 


갑자기 왜 이런 추억이 가족으로 연결되어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대부분 30대가 되면 아이를 낳고 가족에 전념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가족에게 쓰고 나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우자, 아이, 가족이 원동력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줄지도 모른다. 오히려 혼자보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더 든든할 수도 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Manon은 그녀의 남편과 함께 아이를 낳았고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웬만한 고난과 시련은 넘길 수 있는, 넘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앞만 보고 간다는 건,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간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목표를 찍어두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앞만 보고 간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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