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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04. 2023

면식수행자의 타협

긴 연휴가 끝나고 모처럼 혼자 먹는 한 끼를 누릴 수 있는 날이다. 까다로운 입맛은 아니지만 먹어본 음식만 먹고 싶어 하는 남편, 매운 음식 냄새만 맡아도 재채기를 해대는 5세 아동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어도 되는 혼밥. 꼬박 일주일 만이라니. 


보통은 간헐적 단식을 하느라 낮 12시부터 8시 사이에만 밥과 간식을 먹는데, 지난 6일 동안은 시간에 개의치 않고 먹었다. 연휴 끝나면 다시 간헐적 단식을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먹고 즐겼다. 때문인지 오늘은 허기가 조금 일찍 느껴졌다. 오전 열 시쯤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증이 가시질 않았다. 뭔가 씹어서 삼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생각을 '점심에 뭘 해 먹을까?' 궁리하는 것으로 달랬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면 요리라면 어떤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이다. 전에 어디선가 면식수행이라는 표현을 보고 '누가 날 보고 만든 말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신을 모시는 사람이 매일 기도로 수행하듯, 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국수 타령을 해댔다. 하지만 요즘 부쩍 체중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보니 탄수화물 중 으뜸이라 손가락질받는 면 요리를 전처럼 자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국수를 삶아 먹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열 시쯤부터 '열두 시가 되면 냄비에 국수 삶을 물을 끓여야지' 혼자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냄비에 물 올리기를 결심하고부터 식사시간이 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었다. 체중관리와 먹는 즐거움, 단백질 식단과 면식 사이에서 갈등하기에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일찍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면, 열두 시가 되자마자 중면 한 움큼을 삶아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척척 비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체중을 확인하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인바디를 측정해 체지방률을 확인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나는 '점심에 뭘 해 먹을까?'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은 국수, 응당 먹어야 하는 것은 단백질.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찬찬히 떠올려봐도 면 요리를 먹고 싶은 마음을 꺾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했다. 통밀 파스타와 오징어를 한데 넣고 볶아 먹기로 했다.



혼자 먹는 한 끼가 좋은 것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내 맘대로 만들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맛이 없으면 '역시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어'하며 푸념하면 그만이고, 맛있으면 '오! 내일 또 만들어 먹어야지!' 하며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면 된다. 다만 재료를 계량하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해 먹는 것이 혼자 먹는 한 끼라서 다음날 같은 맛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늘 만든 면 요리는 제법 맛있었다. 통밀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 한 마리를 물에 헹궈 손질했다. 면 삶은 물을 작은 공기에 조금 부어두고, 잘 삶아진 면은 채반에 건져 두었다.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오징어, 청양고추를 넣고 면수와 면을 넣어 휘리릭 볶았다. 접시에 옮겨 담은 뒤엔 그라인더로 후추를 갈아 넣었다. 맛을 보았는데 너무 뿌듯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통밀 파스타 면이라니, 남편이 절대 안 먹을 메뉴다. 아이랑 먹는 파스타였다면 청양고추는 무슨, 공룡 모양 파스파 면을 삶고 시판용 로제 파스타 소스를 잔뜩 부어 먹어야 했을 것이다. 


혼자 먹는 점심 식사가 만족스러우면 저녁상 차리는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한 끼 맛있게 먹었으니 저녁은 내 입맛에 안 맞는 메뉴를 내놓아도 아쉬울 것이 없다. 오늘 저녁엔 남편도 아이도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고기반찬을 준비해야겠다. 며칠 전 마트에서 사다 둔 돼지갈비를 굽고 하얗게 무친 콩나물을 내놓으면 남편도 아이도 나도 흡족한 한 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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