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학교 앞에서 하는 생각

예술하는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by anna

가끔 정동길에 간다. 경기 남부에 자리를 잡고 웬만한 일은 집 근처에서 해결하다보니 서울 가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인데, 중구 쪽에서 볼 일이 있으면 꼭 정동길을 찾게 된다. 서울시청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작은 테라스가 있는 커피집에서 짧게나마 시간을 보낸다.


그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예원학교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엔 마침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 쯤 거기에 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도로 끄트머리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차량으로 픽업하러 오는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올도 남김 없이 싹 빗어 올린 여학생들, 제 몸집보다 큰 악기 케이스를 메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저 친구들의 미래는 어떨까?', '학교 생활이 너무 아름답겠지?(물론 저마다의 고충이 있겠지만)', '저 친구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생각하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로 이름을 알린, 혹은 유명세를 탄 건 아니지만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보면 상당수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 적어도 내가 본 경우들은 대부분 그랬다. 부모님 중 한 분이 악기를 다루는 분이면 아들 혹은 딸이 성악이나 무용을 타고난 업으로 삼고, 그림 그리는 부모님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순수미술을 전공해 작가로 활동하거나 디자인 업계에 발을 붙였다.


내 부모님은 예술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들이다. 보고 자란 게 전부이기 때문일까, 재능이 없어서일까. 나도 인문계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남들 다 배우는 피아노를 배웠지만 고학년이 되어서는 시큰둥했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중학교에 입학해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었지만 그저 호기심에 그쳤다. 고등학교 다닐 땐 밴드부에 들어가 드럼을 배웠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스트레스를 핑계로 그냥 뭘 두드리고 때려부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정말 희한하게, 나이 마흔이 다 돼서 예원학교 학생들을 보며 '음악을 공부하는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게 된다(악기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는데 마치 사연이 있어 천추의 한으로 남은 사람마냥, 절대 그런 것이 아닌데).

음악을, 예술을 하는 20대였다면 대학생활이 더 반짝반짝 빛나고 귀했을까. 악기를 다루는 30대였다면 좀 덜 치열하고 윤택하고 정서적으로 풍성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기 전에 이런 상상이 짧은 시간에 그치고 말았는데, 이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겪은대로 키우고 가르치는 게 전부라서,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면.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리 아이는 영 운동신경이 없는데 이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아이가 줄넘기나 달리기를 잘하냐고 물어보면 "아휴, 운동 잘하는 유전자가 없어요."하고 답하는데 나와 남편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에이, 아니에요.'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유전자가 없어요.'라는 말로 신세계에 발들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는 걸까 싶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모님이 나를 키우던 시절에는 IMF니뭐니 경제적으로 녹록치 않아 더러는 끼니 걱정하는 일도 있었다지만 요즘 세상은 그때와 다른데. 조금만 신경써 찾아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스케이트니 스노우보드니 하는 것을 배우는 아이들이 천지인데. 내 아이만 책읽고 색종이 접고 레고조립하는 게 세상 재미의 전부인줄 알고 온종일 집에 있어도 되는 건지.


예원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모두 윤이 나고 귀해보인다. 또 특별한 삶일 것만 같다. 팍팍하거나 치열하기보단 여유롭고 모든 것에 너그러울 것만 같다. 그리고 문득 '내 아이의 삶도 그랬으면' 싶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위해 어떤 걸 해줄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나라에서 권장하는 교육과정에 도태되지 않도록 돕고 끼니마다 좋아하는 밥반찬 해주는 것이 전부인데. 내가 조금만 더 애쓰면 내 아이의 삶은 내것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길어지고 조금 우울한 마음마저 들지만 다행히도 잠시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아이는 깊이 잠들어있다. 내일은 유치원에 안 가는 일요일이니까 공원에 가서 캐치볼을 하고 중고서점에 들러 책구경을 하기로 했다. 무척 들떠서는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을 떠들다 잠들었다. 난 마흔이 다 되도록 손에 닿는 것만 가지고도 즐거워했다. 내 아이는 어떨까? 더 자라서 10대 20대를 지날 때도 지금같은 마음일까. 예원학교 학생들을 보며 나처럼 생각하지는 말길. 그런 마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만 없어 몽클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