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부터 아빠와 티브이 야구 중계를 보던 아이는 일곱 살이 되어 야구 교실에 다니고 있다. 규칙을 알긴 하는 걸까, 친구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맞으면 어쩌나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어디서 야구 교실이 있다는 얘길 듣고 와 하도 졸라대는 통에 결국엔 등록을 했다.
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대강 노는 거겠거니 했더니 이게 웬걸, 리틀 야구단의 명확한 규칙이 있고 코치님의 말씀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기강이 제대로 잡혀있다. 또 아이들간에 수준 차이가 상당해서 눈에 띄게 잘하는 아이도 있다. 그 친구가 배트를 휘두르면 깡 소리와 함께 공이 멀리까지 뻗어 나간다. 수비하는 차례에도 날아드는 공을 무서워하긴커녕 글러브 낀 손을 번쩍 들어 바로 낚아챈다.
반면 내 아들은 그렇지가 않다. 우선 우리 아이가 타석에 서면 코치님의 숨소리부터 달라진다. 나긋나긋하게 아이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말씀하신다. 한마디로 기대가 없다. 수비를 할 때도 공이 멀찍이 떨어져 몇 바퀴 데굴데굴 구른 뒤에야 겨우 쫓아가 맨손으로 집어든다. 글러브 낀 손은 하는 일이 없다. 야구 수업 하는 걸 쭉 지켜본 아이 아빠가 '이건 취미도 아니고 재미로 하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고 여지없이 단정 지었을 정도다.
야구 수업 끝나고 집에 오늘 길엔 그날 연습이나 경기에 대해서 이야길 하는데 주로 잘하는 친구를 자랑하기 바쁘다. 오늘 그 친구는 거의 홈런에 가까운 안타를 쳤어, 그 친구랑 같은 팀을 해서 우리가 이길 수 있었어 이런 이야기다. '넌 오늘 어땠어?' 물으면 재미있었어, 4타수 무안타야 주로 그런 얘길 한다. 양쪽 볼이 벌겋게 달아 올라서는 아주 신나기만 하다.
야구 교실에서 눈에 띄게 잘 하리란 기대를 한 건 아니었는데, 막상 매주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허탈함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쩌면...' 하는 기대를 했나 싶어 혼자 민망해졌다. 그래도 늘 상기되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만둘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박혜윤 작가는 <도시인의 월든>에서 '월드 클래스 발레리나가 되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또 다른 마음의 자세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아이와 많이 나누었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땐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무언가를 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지 않아도 되고 피아노 콩쿠르에서 단상에 올라 상을 받지 않아도 좋다고. 1등을 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조금은 덜 그늘진 얼굴로 졸업 사진을 찍었을지 모른다.
아이의 야구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전혀 염려스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단념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아이 가슴속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 또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다. 그와 중에 최악의 상황이라면 잘하는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해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교우관계까지 나빠진다면 절망뿐이다. 괜한 상상으로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이런 불안이 내 눈앞을 캄캄하게 한다.
한 육아 전문가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재능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열 번 넘게 하면 잘하게 된다는 이치를 깨닫게 돕는 일이라고 했다. 그 얘길 처음 들었을 땐 명언처럼 새기고 있었는데 최근엔 거기에 몇 마디를 더 갖다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열 번을 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일도 있다고. 능숙해지지 못해도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설령 열 번을 채우지 못하고 관두는 경험도 충분히 좋은 거라고.
남들과 견주기보단 스스로 내실 있게 기쁨과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일곱 살 아이를 쓰다듬으며 간절히 빌고 나 자신에게도 주문을 건다. 아이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잘 살펴 알아차릴 수 있길. 그 마음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늘 칭찬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