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가짜 가난이야
스마트폰 앱만 켰다 하면 블랙 프라이데이 광고가 줄줄 쏟아진다. 세상 모든 광고가 나의 안주머니 털기에 혈안이 된마냥 할인을 외쳐대지만 25%로는 어림도 없지. 50% 이상이면 한 번 클릭은 해본다. 호기심에 눌러본 광고는 또다른 광고를 물고 또 물고 온다. 카테고리도 상관 없다. 운동복, 그릇, 다이어리, 가구, 화장품 기타 등등. 세상 모든 온라인 쇼핑몰이 제발 여기 한 번 들러보라며 아우성이다.
세상 온갖 것을 반값보다 싸게 판다고 해도 손사레치며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물건을 사는 것도, 가지고 있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 고심해서 살 것을 고르는 것도, 집안 구석구석에 무언가를 빼곡하게 채워두고 관리하는 것도 귀찮다. 귀찮음이 아름다움에 관한 열망, 소유욕 모두를 이겨냈다.
쇼핑할 때 가장 인색해지는 카테고리는 옷, 신발따위다. 재택근무 6년차로 외출을 거의 안 하는 편인데다가 패션에 관심도 없다보니 입던 옷이 헤지고 얼룩져 못 입게 되면 그제야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찾아 쇼핑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살 때 낮은가격순으로 정렬해 두고 보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검색창에 맨투맨 티셔츠를 입력하고 낮은가격순으로 펼쳐둔다. 크스롤을 아래로 내리면 내릴수록 값이 올라가고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가능성은 점차 낮아진다. 어느새 가격이 3만원대에 진입하면 나는 어떤지 쇼핑에 흥미를 잃고 만다. 세일할 때를 기다려야겠어, 생각하고 인터넷 창을 끈다. 이렇게 새 옷 구매의 기회는 사라지고 나는 입던 옷, 헤진 진옷을 또 걸치고 며칠을 나는 것이다.
내 또래 아이 엄마들 사이에선 계절별 패션 아이템이 있다. 겨울엔 몽클레어. 여름에는 그 밀짚모자, 매번 이름을 떠올리기도 어려운 헬렌카민스키이다. 더러는 '너도 하나 사'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그거 살 돈 없다'고 갈음하며 화제를 돌린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밀짚모자를 20만원 주고 사는 게 말이 되니?' 되묻고 싶지만 소비 트렌드에 반기를 드는 표를 내고 싶지 않으니 그만 두고 만다.
낮은가격순 쇼핑에 익숙하고 약간의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는 나지만 아끼지 않는 부분이 있다. 먹거리 쇼핑에서는 철벽이 바로 무너진다. 진짜 에르메스는 본 적이 없지만 목초 먹인 소에게서 얻었다는 버터계의 에르메스, 공정무역 거래로 판매하는 커피계의 에르메스 앞에서는 바로 지갑이 열린다. 방부제 없이 만든 빵을 한정수량으로 파는 가게에 오픈런을 하고, 제철 채소로 만든 피클을 선주문 받는다는 소식에 네이버 시계를 켜두고 클릭질을 하는데 불만이 없는 것이다.
한수희 작가는 <온전히 나답게>에서 '대문 위의 좁고 위태로운 공간이나 고무 대야, 빈 깡통에라도 꽃을 심는 할머니들은 가진 게 없어도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 눈에는 그런 것이 품위로 보인다.'고 썼다. 나는 품위와 품격, 교양과 우아함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그걸 밖으로 드러내는 지점이 옷차림은 아니다. 내 입에 들어가 내 몸을 채우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먹거리 사는 데는 아낌이 없는 것이다.
옷 앞에서의 내 가난은 가짜 가난이다. 지금도 몇 년 전 세일할 때 사 둔 탑텐 후리스를 입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궁색하게 오래된 옷을 입는 것을 환경보호 실천이라고 포장해 혼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