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의 이야기
#태풍 #관광 #꿈
키다리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살았다. 제주와의 첫 기억은 태풍이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제주도를 여행 왔는데 하필이면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였다. 숙소가 정전되고 하루 종일 몰아치는 비바람에 제대로 된 관광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날 택시 투어를 했던 기억이 좋아 매년 세 번 이상 제주를 찾았고 많게는 열 번도 왔다.
“삼십 대 초반까지 꾸준히 제주를 찾았고, 40살이 되면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런데 2012년에 퇴사를 하고 우연히 제주도민 친구와의 인연으로 제주에 내려왔어요. 신창리에서 열흘 정도 지냈는데, 이때도 볼라벤이 왔던 기억이 나요.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 마을 분들이 다 나와서 길을 청소하는 거예요. 그 정겨운 풍경이 잊히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이주를 결심한 키다리는 직장부터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급여 수준이 낮았다. 돈 말고 다른 가치에 집중했고, 제주에서의 첫 직장은 마을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인연은 그의 제주살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후 꿈이었던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운영도 해볼 수 있었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그 시기 즈음 결혼까지 하게 되어 잠시 쉬다 제주다운 여행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난 10년 세월 동안 다양한 삶을 경험한 그에게 추가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Q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준다면?
디자인과 콘텐츠 기획을 하는 회사에 다닌다. 중요한 건 제주에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랑하자면, 대표님의 마인드가 참 좋다. 맡은 일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꼭 추가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주는 사람이다. 이런 부분이 나에게도 긍정적 자극이 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도 신선한 조합이라 일이 너무 재미있다.
Q 토박이와의 결혼생활은 어떤지?
벌써 결혼 6년 차인데 지금 사는 동네가 만족스럽고 좋다. 처음엔 토박이 같다는 말이 싫었는데, 이제는 내가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마을에 살며 딱히 이주민이라고 불편함을 겪거나 편견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이주민으로서 지역에 더 깊게 스며들 수 있었던 계기가 로컬 하고 결혼한 점이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Q 괸당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곧 사라질 문화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문화는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a와 b라는 식당이 있는데 b가 더 맛있는 곳이지만 괸당 때문에 a를 소개하는 상황을 자주 봐왔다. 이런 식의 문화는 개인과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년 동안 제주도도 많이 변했고, 이주민들의 유입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괸당 문화는 서서히 사라질 것 같다.
Q 도민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역에 살며 그곳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 그래서 난 도민이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도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성장과 발전을 꿈꾸고, 환경이며 경제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계속 자연스레 생기는 거, 그게 도민인 것 같다.
#소통 #배움 #경험치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키다리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아랫세대와 단절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를 떠올렸고, 50살쯤 교수님이 되어 학생들과 교류하는 꿈을 꾼다.
“저는 주변으로부터 인풋을 받는 걸 좋아해요. 특히 꾸준히 아랫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어요. 교수가 되어 제가 제주에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알려주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거고, 저도 그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게 있을 거예요. 중년을 지나 노년까지 이런 상호적 관계가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준 곳이 바로 제주라고 말하는 키다리. 이주를 통해 꿈꿔왔던 게스트하우스 운영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살 때보다 만나게 된 사람들의 폭도 매우 넓고 크다. 그의 다양한 인연 속에 내가 속한다는 것이 행운이라 느끼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