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 강박
사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10월에 적어둔 일기를 옮김으로써 글을 대신한다.
올해 나에게 가장 큰 목표는 건강이었고, 동생과의 내기로 시작된 헬스 신생아의 삶은 초반에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 미화된 기억 때문인지 사실 처음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처음 배우는 운동은 재미있었고, 먹고 싶은 것들을 참는 것은 조금 괴로웠지만 식단도 맛있었다. 매일 나를 위해 땀을 흘리고 나를 위해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살도 금방 빠지고 이상하리만큼 활력이 넘쳤다. 매일 새벽 3-4시에 기상해서 활동해도 전혀 피곤함 없이 그렇게 한 두 달을 살았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에게도,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아이러니하게 5월 말 중간점검을 통해 이미 목표를 이루고, 6월 한 달을 미친 듯이 행복하게 살아내고 났더니 에너지가 다 소진된 것인지 7월부터 힘이 점점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보자면, 우선 운동 권태기가 와서 전만큼 성취감도 재미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2주 만에 체지방만 4kg이 빠질 정도로 변화가 빨랐는데, 유지 기간에는 1-2kg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안심하고 먹고 또 운동하고를 반복했기에 남은 기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난생처음 재밌다고 느꼈던 일도 사람의 변화로 역시 착각이었구나를 알게 했다. 힘들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그게 사랑이라 여겼지만 이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어쩌면 이 생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향 같은 것인데 그 당시 나는 그 사랑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빠른 정리를 하고 다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내면, 그러면 성공은 머지않았다고 여겼다.
이제 나에게 집중이 안되었다. 다 재미없고 싫었다. 왜 해야 되나 싶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나는 힘든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데 그 현실이 너무 벅찼다. 나라도 스스로 위로하자고 생각했다.
그게 먹는 걸로 풀려서 살이 다시 쪘다. 배가 나오고 몸이 무거워지니 죄책감에 운동을 두, 세배로 했다. 더 걷고, 지칠 정도로 힘을 쏟았다. 그런데 운동을 끝내고 나오면 다시 먹을 것에 손이 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오늘 힘든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스스로 자책하고 위안 삼고 응원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한 한 달이 지났고 내기 종료일까지 2주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던 9월의 첫날부터 멘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즐거워야 하는 휴가에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코로나 핑계를 대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혼자 올레길을 걸었는데 생각보다 늘어난 체력이 스스로도 놀라웠지만 이는 다시 더 먹고 배를 채우는 보상심리로 작용했다. 혼자 있으니까, 스스로 절제를 하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기 쉽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나를 학대했다.
일주일이 남은 시점에는 실패를 인정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 결과가 꼭 중요한 것만은 아니야. 그냥 내가 지금까지 포기 않고 해온 이 과정이 너무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수치에 너무 목매달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았지만 사실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몸으로 나타난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이 힘들어졌다. 정신이 힘드니까 모든 것이 예민해지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좋게 보던 내 모습은 이제 없겠지? 살이 찐 게 티가 나는 거 아닐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커지니까 회사도 친구도 가족도 만나기가 싫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자며 괜찮다며 연휴를 보내고 사람들 만났지만 전혀 편하거나 즐겁지가 않았다.
기다렸던 해방의 날에 완벽한 결과로 마무리하지 못했으니 찝찝한 마음으로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어댔다. 정말 배가 찢어질 정도로.. 그게 한심했다. 맛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처음 한두 입은 즐겁지만, 먹고 나면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절제가 안된다. 먹고 있으면서 먹는 생각을 한다. 먹고 있는데 다른 먹을 것을 찾는다. 그걸 숨기느라 혼자 나가서 무언가를 사 먹었다.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지금 이걸 먹고 나면 나중엔 생각이 안 나겠지, 하는 심정도 있었다.
다시 제주에서 혼자가 되니 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치킨 1마리를 거뜬히 먹어치웠다.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니까 움직여야지, 했는데 몸이 무거워서 그마저도 쉽지 않아 졌다. 어차피 먹었으니 이것도 먹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관대해져 버렸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너무 들었고 한편으론 그만큼 참았으니 이 정도 상황에 맞닥뜨린 게 당연하다고도 여겨졌다. 의지의 문제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해봤으니 다시 돌아가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도 안다. 만족스럽지 않다. 모든 것이. 일도 사람도 그냥 지금의 내 상태, 삶 모든 것이 싫다.
자기만족에 사는 나였는데 하나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 늪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힘이 없다. 에너지가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생각도 하기 싫은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나를 갉아먹고 있다. 그 와중에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라 힘든 티도 못 내고 그저 내가 벌인 일이니까 내가 마무리해야지, 내가 시작한 것들이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하는 굴레 속에서 너무 괴롭다.
힘들다. 이 감정을 내가 추스르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도 잘 아는데 그게 안된다. 지금은 그냥 내가 한심하다. 왜 이런 상황까지 나를 내몰고 결국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생각에 그럼 남은 회차라도, 지금 맡은 일들이라도 잘 <마무리>하는 경험을 해보자고 다독이지만 자신이 없다. 그래. 이젠 자신이 없다.
그동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나의 상태를 직시하고 나니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고 싶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자. 나를 지키자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에 예약이 되는 곳이라 찾아갔는데 차가 막혀서 조금 늦는 상황이었고 가는 길에 정말 소름이 돋게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힘들 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꼭 그렇게 알고 전화를 한다. 나는 정말 눈물을 꾹꾹 참으며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아픈데 없냐고 물었고, 나는 정신이 아프다고 말했다. 솔직히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걱정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냥 일도 너무 없고, 운동도 힘들고, 먹는 걸 참는 게 제일 스트레스라 말했다. 엄마는 뭐든 너무 억지로 하지 말라고 마음 편히 먹으라고 말해줬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상담을 가는 길이니 참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렀다.
상담실에 도착해서 간단히 신상명세를 작성하고 하얀 공간 안에 상담사와 단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이라고 해서 뭐 크게 특별한 건 없었고, 그분은 그저 내 이야기를 아주 크게 공감하며 들어주는 게 다였다. 나는 지금 나에게 닥친 이 상황들에 대해 약간은 횡설수설하며 이야기를 해나갔다. 물론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이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란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고 한바탕 울고 나니까, 그냥 용기를 잘 냈다 싶었다.
상담사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했다. 애쓰지 않는 것도 애써서 하지 말라고. 그냥 흘러가는 데로 두라고 말했다. 날씬한 나만 사랑할 거냐고, 성공한 나만 사랑할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살이 찌고 실패한 나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
해야 할 것들은 많아서 억지로 하는 중이다.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또 외롭다. 외롭지만 정말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화요일엔 한라병원에 가서 심장 검사도 하고 왔다. 괜찮다고 한다. 정상이라고 한다. 건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아플까. 그래, 나만 나를 못 믿고 있다. 다들 믿고 있는데 내가 나를 제일 못 믿는다.
"나만 나를 믿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