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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01. 2024

2024 파리의 안나

D-4

출국까지 4일 남았다. 잠이 안 온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일상을 벗어나는 설렘과 즐거움을 주겠지만, 사실 이번엔 걱정이 더 앞선다.


1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점. 그게 내 가족과 곧 가족이 될 사람의 이상한 조합이라는 점이다.


이 사건의 발단과 전개는 모두 내 탓(?)이다.


처음 파리올림픽 소식을 접했을 때는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 갈 핑계’라는 생각에 다짜고짜 오빠를 꼬셨다. 길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신혼여행>으로 파리에 가자고 말이다.


내 터무니없는 제안에도 오빠는 “그래~”하며 웃어줬고, 나는 그 제안을 유지했어야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은 티켓을 추첨제로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말 그대로 ‘운이 좋아야’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티켓 드로우를 넣어두고, 1년 뒤 내 상황을 짐작할 수 없었기에 남동생의 계정을 만들어 추가로 드로우를 했다. 누구 하나 당첨되면 파리로 떠나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이 날아왔다.

You were successful in the draw!

미친. 진짜 당첨이 된 것이다. 딱 이틀 동안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개인 슬롯이 열리는데, 약간의 상술로 3가지 경기를 묶어서만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고심 끝에 8/1 시작하는 양궁부터, 축구, 레슬링 경기를 예약했다. 물론 남자친구와 함께 갈 것이므로 2장씩 샀다.


그런데 며칠 뒤..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누나, 파리올림픽에서 메일이 왔는데?” 그렇다. 내 동생도 드로우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 내 주변에 파리올림픽을 보러 떠나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드로우를 하면 다 당첨되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동생에게 물었다. “너도 갈 거야?”

동생이 말했다. “가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우리의 신혼여행 계획은 막을 내렸다.


게다가 나와 동생의 파리 여행 계획을 들은 아버지가 “나도 데려가라”라고 말하는 바람에 우리는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는 문준영이다.


그는 나의 무계획한 계획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나와 함께 해주기로 약속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나는.. 최대한 내 가족과 남자친구가 머나먼 타국에서 불편할 일이 없게(만드는 것은 사실 불가능이지만) 하고 싶어 머리를 쥐어짰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길게 쉴 수 없는 직장인이기에, 각자 5개씩 연차를 소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짰다. 또한 우리 가족과 오빠가 최소한의 만남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게 3일 정도만 일정이 겹칠 수 있도록 조정했다.


그리하여 나와 아버지, 동생은 8/5 월요일 출발하고, 오빠는 8/7 수요일에 파리에 도착하며, 아버지와 동생은 8/10 토요일에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다. 남자친구와 나는 이틀 더 시간을 보내고 제주로 돌아올 거다.


참고로 양궁과 축구 8강전은 일정이 안 맞아 티켓 리셀을 했고, 레슬링 경기와 축구 결승전을 본다.


7박 8일의 짧은 일정.

앞뒤로 붙은 살인적인 근무 스케줄..

가족과 연인을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사실은 본인 멘탈 케어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


그래서 잠이 안 온다.

시차적응을 잘해야 할 텐데, 불어도 다 까먹었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10년 만에 만나는 박사님 얼굴은 어떨까, 경기장을 잘 찾아갈 수 있겠지, 기념품 사다 달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 돈 없는데, 열두 시간 비행을 견딜 수 있을까, 아빠랑 싸우면 안 되는데, 오빠 앞에서 짜증 내지 말아야지, 옷을 너무 많이 챙겼나, 소매치기는 안 당하겠지, 명품 사고 싶으면 어떡하지, 더위 먹지는 않겠지, 염증 또 생기면 안 되는데...


10년 전에 파리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을 땐 이보다 더 원초적인 걱정이 앞섰다. 도난, 테러, 납치, 죽음...

그런데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상관없다고도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잘 지내다 살아서 돌아오고 싶다.


별일 없기를. Bonne 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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