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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07. 2024

여행은 그저 여행일 때 가장 즐거운 법

2024 파리의 안나 D+1

시차 적응이 안 된 건지 새벽 세시쯤 깨서 핸드폰 좀 하다가 다시 잤다. 여섯 시 반에 다시 일어나 씻는데, 작은 샤워부스 안에 머리통을 넣고 감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행은 어쩌면 내 시간과 돈을 쓰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아주 비합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식을 먹고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리 숙소는 7호선 끝의 villejuif 역에 있는데 다행히 투어 미팅장소가 opera 여서 환승 없이 갈 수 있었다. 역에서 2024 파리올림픽 패스를 구매하려는데, 내가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본 가격과 달랐다. 5일권이 분명 60유로였는데, 80유로라고 뜨길래 옆의 기계에서도 다시 확인했지만 똑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구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Excusez-moi“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Bonjour" 파리 올림픽패스를 원한다고 말하자 어찌 알았는지 5일권이냐 묻더라. 세 명이라 하니 모니터에 가격이 떴는데 카드 발급 수수료 인당 2유로와 5일권 가격 60유로, 해서 186유로라고 하더라. 뭐야, 60유로가 맞잖아??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니 “only card"라고 하더라.. 이번 여행을 위해 트래블 카드를 발급받았으나, 그건 마지막날 아울렛에서 쓰려고 따로 챙겨 나오지 않았는데.


“헐 카드밖에 안 된대“ 당황한 나에게 동생은 씩 웃으며 “나 이번에 글로벌 체크카드 만들었어”라며 검은색 카드를 꺼냈다. 곧바로 카드기에 카드를 삽입하였는데 결제 오류가 떴다. 한번 더 시도했는데도 똑같았다. 카드를 꺼내어보니 비자나 마스터가 표시되어야 할 곳에 <BC카드>라고 쓰여있었다.


“야 이거 해외결제 안 되는 거네“ 내 말에 동생은 당황하며 ”아니 이번에 일부러 만든 건데? “하며 카드를 살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뒤에는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겨버린 상태였다. 나는 급히 동생의 지갑을 뒤져(?) 마스터가 표시된 다른 카드를 꺼내어 삽입했고, 결제는 무사히 완료되었다. 창구 직원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수증과 올림픽패스 세 장을 주었고,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동생은 욕지거리를 하며 본인이 발급받은 카드 사이트에서 이런 문구를 확인한다. <해외 결제 연회비 3,000원> 그렇다. 표규한은 카드 발급 마지막 단계에서 안내 사항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삼천원을 내가 왜 내‘라고 생각하며 <글로벌 카드>를 국내 전용으로 발급한 것이다... 출발 전부터 유쾌한 에피소드 하나 적립

나도 투어는 처음이었고, 오페라는 예전에 우동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본 것이 전부였기에 이곳이 왜 이런 형태이며, 어느 시대 누가 개발했는지, 역사적 사실과 특징을 알게 되는 건 정말 유익하고 좋았다. 심지어 날씨도 맑고 선선하여 기분까지 더 좋았다.


몽마르트르에 도착해서는 계단 없이 바로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Anvers역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12개에 5유로짜리 에펠탑 열쇠고리를 보며 선물로 사갈까, 하다가 첫날부터 쇼핑을 하기엔 (매우 작은) 짐이라도 늘리는 게 싫어 우선 적어만 두었다. 투어는 4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내 체력의 한계는 2시간 반이라 남은 시간은 억지로 집중하느라 힘들었다.

챙겨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투어 멤버들과 가이드님까지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다들 기뻐하셔서 나도 좋았다. 점심은 규한이를 위해 수제버거 가게에 갔는데 서버가 영어와 불어를 적당히 혼용하며 이야기를 해주어서 의사소통이 어렵지는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간 파리는 어쩐지 ‘불어만 쓰는 프랑스인들’이라는 내 동경과 편견을 깨 주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주문을 하고, merci를 외쳐봐도 돌아오는 답은 thank you였으니 말이다. 여행하기 더 좋아진 건가? 싶으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아쉽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표은지와 표규한, 그리고 표영호 중에 가장 여행 체질인 것은 놀랍게도 표영호, 아빠였다. 아빠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아무거나 다 잘 먹으며, 새로운 풍경과 사실에 대해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제일 신나 했다. 물론 영어도 불어도 단 한마디도 못 하고, 심지어 파리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말을 하는 승무원들에게 조차 제대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빠는 연신 고프로와 휴대폰으로 영상을 남기고 사진을 찍어댔다.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제대로 된 프랑스 음식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기내식도, 민박집에서 주는 한식도, 느끼한 수제버거도 정말 깨끗하게 싹 비워냈다. 아빠가 여행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이런 불편한 곳에서는 다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여행은 그저 여행일 때 가장 즐거운 법. 스물셋의 나에게 고맙다. 그때 살아봐 줘서, 아쉽지 않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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