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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pr 10. 2022

소속 없음

이 뭐 어때서?

네 달째 쉬고 있다.

작년 12월 퇴사를 한 뒤로 구직에 대한 특별한 의지 없이 그냥 쉬는 중이다. 언제까지 쉴 건지, 언제부터 다시 일을 할 건지 잘 모르겠다. 당장은 고민 없이 놀고 있다.


그러던  며칠  일요일  갑자기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진로 수업 아르바이트. 월화수 3, 하루 6시간, 시급 1 


당장 다음 날부터 가야 하는 일정이라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특별한 약속이 없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내가 지금 '무직'이라는 것이었다.


곧장 아르바이트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고,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전해졌다. 나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데 괜찮은가-"를 물어보았고 그는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보내온 강사 확인서와 강사 카드에 '소속-없음'을 적어 회신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중학교 영상 수업 보조강사를 했었던 먼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과정을 설명하고, 적당히 말 걸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첫날 학생들은 여고 2학년생이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 예뻐요- 누구 닮았어요"하며 수줍게 말 걸며 전해준 쪽지들을 소중히 받아왔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남녀공학이었고, 특성화고라 전날보다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좀처럼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자 시간도 더디 흘렀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고, 나를 포함한 보조강사 열명이 둘러앉아 이번 교육을 주체한 무슨무슨 센터의 센터장에게 강사 확인서 작성을 요구받았다. 미리 작성해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점이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뭐 '까라면 까야지'하는 생각으로 역시나 소속엔 '없음'을 써 내려갔을 때였다.


"아니! 소속이 없으면 어떡해요?"

센터장이 말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소리쳤다.')


"소속이 없으니까요" 내가 차분히 대답했다.

순간 다른 강사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센터장은 소속이 없으면 안 된다고 처음 나에게 연락했던 담당자에게 경위를 물었다. 아마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고, 졸지에 나는 '소속도 없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미묘한 시선이 얽히고설키는 사이에 나의 기분은 매우 불쾌해졌지만, 애써 괜찮은 척 센터장의 요구대로 그 무슨무슨 센터의 강사라고 내 소속을 다시 적어 내려갔다.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9명은 모두 직접 창업을 했거나 누군가 창업한 회사에 소속된 이들이었고,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나보다 젊었다.


민망하고,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서른한 살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인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백수인 것은 참으로 복잡 미묘한 일이구나-를 깨달았다.


새삼스럽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의 존재를 확인했달까?


하지만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나는 나를 믿는다.

소속 없음, 이 뭐 어때서?


내 소속은 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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