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오늘부터 예비자 교리 시작했어요. 열심히 해서 꼭 세례 받을게요. 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해, 1월 첫 주일날에 걸려온 전화였다. 아들만 둘인 나에게 딸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대녀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게는 대녀들 말고 딸이 하나 더 있다. 운동선수인 둘째 아들의 여자 친구 H다.
2 년 전 아들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번 봐 달라 할 때만 해도 탐탁지 않았었다. 운동에 전념해야만 할 시기에 무슨 여자 친구냐고 딱 잘라 말하다가 아차 싶었다. 운동선수는 사람이 아닌가, 남자도 아닌가. 그리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어린 청춘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접어두고 오직 운동만 해 온 아들이다. 친구도 동료 선수들밖에 없다. 축구의 세계를 떠나서는 잘 아는 것도 없는 순진무구한 어린애로만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동료 선수로부터 여자 친구를 소개받았다니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기나 하자 했던 것이 지금은 아들보다도 내가 더 좋아하는 가족이 되어버렸다.
독특한 만남이라고 할까, 난 두 아이의 교제를 허락하는 대신 나와 함께 만나는 걸 전제로 했다. 늘 합숙생활을 하는 아들은 포항에 있고 H는 수도권에 산다. 자주 만날 수 도 없는데 어쩌다 외출 외박을 받아 나오게 되면 엄마도 봐야 하고 친구도 봐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영동에 살고 있는 나에게 소풍 오는 마음으로 둘 다 오라고 했다. 포항에서 올라오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장거리 연애지만 중간지점이다. H의 집에는 내가 전화를 해서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허락도 받았다. 정말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둘은 나와 함께 데이트를 해왔다.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집 주변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밭을 일구고 향기 나는 풀들을 심고 모두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즐기며 하는 일이었다. 주일에 만나면 함께 성당엘 갔다. 종교가 없던 H는 해가 바뀌자 제일 먼저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갔고 그 일이 내가 가장 기뻐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전화를 했던 거다. 나와 만난 지 1년 만이다. 그야말로 새해 첫 선물이었다.
어떤 만남이 하느님 보시기에 어여쁘고 바람직한 만남이었을까. 당분간은 나의 딸로 지내줄 것을 당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이들은 나의 그런 마음을 잘 이해했고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음을 나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 이 딸이 지난해 성모승천 대축일에 영세를 받았다. 주말이면 함께 성당에 가고 밭일을 도와주기 위해 종종 내가 있는 시골로 내려온다. 생각해보면 난 하느님께 받은 좋은 선물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연을 지키며 사는 일이든 가족을 잘 보살피며 사는 일이든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