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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 Mar 22. 2024

템페스트*

분주한 벌 떼     

우리 집 울타리는 작고 흰 꽃송이로 윙윙댔다

쥐똥나무 벽 틈새에 집을 짓는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들을 차마 어쩌지 못하고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던 여름

희디흰 달달함에 취한 벌들은 집을 짓다말고 앉아 낮잠을 잔다

어쩌라고…

그 벽을 넘어가지 못하고 꽃향기에 움츠러든 나를 달래던 건

오후의 노란 바람, 부수어버릴 수 없는 저들의 집을 바람은 

칭칭 감아대고 

놀라서 깨어난 벌들은 잉잉대며 무엇인가 찾아 들락거린다

순간, 내가 지키려는 것은 무엇이고 

저 벌 떼가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지 울렁거렸다 

    

강가를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프라하 국립극장 육중한 건물 모퉁이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제자리인 양 놓여있다

우리 언니의 연주는 노을 같아요, 소녀의 목소리 뒤로

피아노 앞에 차분히 앉는 실루엣

강물이 발갛게 번지고 저녁으로 가는 길은 푸르다

건반을 넘나드는 손등 위로 수줍은 미소가 쌓이다가 이내,

바람이 불고 분노가 달아나고 꽃향기가 날아들고 

어둠을 희석시킨 백야의 붉음이 손가락을 물들이는데

아, 나는 익숙한 그 집 담장 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그 밤, 강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스미는 불빛 사이로  

봉인된 시간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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