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의 글과 함께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오늘을 기록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날을 회상하는 오늘.
1980년의 봄
무겁고 차가웠던 그 시절의 공기가 아직도 폐부 깊숙이 남아있다.
스무 살의 나는 거리마다 겨눠진 보이지 않는 총구 아래에서 달려야 하는 날이 많았다.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이 나라의 앞은 어둠에 휩싸였다.
광주에서는, 총칼을 보이며 국민의 목소리마저 앗아가려 했다. 보이는 총칼 앞에서 강요받은 그것,
그러나 침묵을 강요받은 입술들은 오히려 더 크게 외쳤고, 그 함성은 피로 물들었다.
많은 날들을 보고, 듣고, 떠올려야 했던 그 시절의 잔인하고 파렴치한 억압 속에서 수많은 나와 너는
어리고 젊었기에, 상처는 더욱 깊었다. 분노는 억울함으로 가슴 한켠에 응고되어 지금도 녹지 않는다.
1980년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상흔이다.
44년이 흐른 지금, 다시 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소식들이 이어진다.
며칠 전 서울의 밤, 국회 앞 거리의 폭풍은 잠시 44년 전을 돌아보게 했다.
6시간 만에 해제된 비상계엄이지만, 그 여파는 깊은 수렁이 되어 우리 사회를 위협한다.
해제 이후에 들려오는 수많은 놀라운 소식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갈수록 크고 깊어지는 수렁.
그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시 그 시절을 떠올려야 한다.
그 시절 스무 살의 붉은 봄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그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후배 시인의 글을 읽으며 달리기를 잘해야 했던 나의 그 시절이 떠올라 몇 자 적어 본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숨이 차오른다.
기록적인 밤 -이병철(시인, 문학평론가, 대학 강사)
1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온 날
그게 기록적인 눈인지도 모르고
와 눈 엄청 오네
집에 갈 때 힘들겠네
어어 차가 못 올라가
제설을 왜 안 하냐고
그래도 예쁘다 다 같이 웃으면서
그냥 눈이 오는구나 조금 많이 오는구나 했는데
1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래
그날도 그랬을까
눈이 오면 눈발 같은 총알이
비가 오면 빗발 같은 죽음이
와 총소리가 난다
와 사람들이 죽는다
어어 배가 가라앉네
그때는 몰랐지
117년 만의 폭설
그때는 몰랐어
어어 4월과 어어 5월과 어어 핼러윈
53중 추돌사고가 나고 창고 지붕이 무너졌대
지나고야 알았어 117년도 폭동도 전원 구조도
나는 베란다에 눈사람을 만들고 창밖을 보며
귤을 까먹었다 까먹으면서
동대표인 나는 관리사무소에서 염화칼슘을 준다는 걸
왜 마다했을까 골똘해졌지만
며칠 뒤 그 많던 눈 다 녹고
117년도 녹아 생각 없는 저녁
닭볶음탕 끓여 소주 마시는데
45년 만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와 헬기다 와 장갑차다
처단 알아? 처단 알아?
닭뼈가 쌓이지 않는다 시체가 쌓인 영상을 봤다
지나고 나면 영상이 아니다
어어 미쳤나 봐
너는 알아?
우리가 기록적인 밤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이건 몇 년 짜리야? 기한 없음
몰라도 알아 뜨거우니까 어어
가스 불을 끄자 심장이 끓어 넘치고 있다
이제는 어어 저놈들이
*일이 손에 안 잡혀 쓴 시. 지면 발표할 게 아니므로 여럿이 같이 읽자고 여기 올린다. 이번엔 어어 하다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 너희가 어어 하다가 우리에게 집어삼켜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