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친구가 되는 곳

디보카 사르카, prírodni park 2

by 혜솔

디보카 사르카의 탁 트인 산등성이에서의 낭만은 계속되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나도 한 점 부서지는 빛으로 앉아있어도 좋았고 멀리 오보라 숲 속에 살짝 보이는 별집 지붕을 바라보아도 좋았다. 올 곳이 있고 갈 곳도 있다는 안도감의 범위 안에서 마음은 늘 모험을 즐긴 듯하다.

디보카 사르카는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이는 산등성이의 풀밭이 매력적이지만 그렇게만 보면 자칫, 어느 공원의 비탈진 잔디밭 정도로 보이기가 쉽다. 하지만 막상 걸어 오르려고 가까이 다가와 보면 분명 이곳은 산등성이 구릉이 맞다. 지형학적인 매력이 여기에 있다. 구릉엔 나무 몇 그루가 있고 넓게 펼쳐진 풀밭이다. 평평하지 않고 약간의 경사가 있는 비탈진 곳이라는 매력도 장점이다. 이곳을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사진 비탈길이긴 해도 충분히 안정감 있고 험하지 않아서 걷는 것과 오르는 것을 적당히 즐기기에 그만이다. 도로가에서 바라보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디보카 사르카를 즐겨 찾는 사람들이다. 구릉 위에서 내려다보는 곳은 절벽 아래나 다름없지만 절벽과 절벽 사이 곱고 반듯한 길이 나 있어 구릉을 오르기 힘든 사람들에게 산책길로 제격이다. 하지만 그 길이 이어지는 길이는 참으로 방대하다는 것에 나는 여러 번 놀랐다.

오늘도 나는 디보카 사르카의 생태공원(prirodni park)이라 이름 지어진 이 둘레길을 걷는다. 걸으면서 느끼지만 숲이란 참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의 숲은 인위적이지 않고 최대한 자연 그대로를 살려두려 애쓴 흔적들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언젠가 디보카 사르카 절벽의 산등성이에서 뒤쪽으로 이어진 초원을 걷다가 햇빛을 피하느라 숲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숲은 이미 산비탈로 이어졌고 길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길을 (내가 길을 만들며 지나간 것인지도 모름) 거쳐 까마득한 산 위에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되돌아 갈 수도 전진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졌지만 이상하게 겁이 나지 않았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었다. 주로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은 절벽 위 산등성이였고 그곳에서 풀밭을 거닐거나 앉아 있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 산 아래로 트래킹 길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내려가기만 하면 무조건 그 길과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길 없는 산비탈에서 길을 만들며 내려가다 보니 약간의 사람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비탈을 헤집고 내려갔다. 나는 산의 중간쯤에 서 있고 저 아래 풀밭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살았다 하고 산비탈을 미끄러지듯 하면서 내려가 보니 눈앞에 개울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통나무 다리가 놓여있긴 했어도 그야말로 둥근 나무기둥을 뉘어놓은 그 상태라 자신이 없었다.

넓은 개울은 아니었지만 며칠 전에 내린 폭우로 물살은 세었다. 다리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건너편 한 사람이 보았다. 난감한 표정의 그분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미술 교사인 듯했는데 어떻게 도와줄지를 몰라 애매해하던 그 모습을 보며 용기를 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리고 고교시절, 체육시간에 평균대를 걷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 둘, 셋, 다다다다 폴짝!

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그 미술 선생은 내게, very good! nice! 를 외치며 박수를 쳐 주었다. 산을 내려와 너른 풀밭에 서서 올려다보니 내가 꽤 높은 산 하나를 넘어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곳 지형의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분명 초원을 걷다가 숲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이 산꼭대기이었다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한...

이 통나무다리를 건너는데 한참 걸렸다니, 지금보니 별것 아니었네 싶다.

그 후로 나는 매주 디보카 사르카 지역의 숲을 각각 다른 방향에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름 이 국립공원의 탐방대원이 되어 몇 개의 루트를 정하고 오늘은 이쪽에서 다음엔 저쪽에서 숲을 헤치고 다녔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뺵빽하고 방대했던 그 숲을 말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간간히 개울도 만나고 넓은 풀밭도 많다.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도 따로 만들어져 있다. 간단히 소풍 나온 사람들은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더러는 바비큐 파티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이 숲속을 한 점에 불과한 내가 헤치고 다닐 줄이야...
아래를 보면 높은 산인데 막상 앉은 자리에서 돌아보면 초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프라하에서 살고 있는 한, 이곳은 내게 은인이 될 것이라 짐작한다. 낯선 타국이라 해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동포이고 지인들이지만 그래도 낯은 설고 외롭기도 한 적이 분명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달려와 안길 수 있는 곳, 그곳이 여기 디보카 사르카의 생태공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