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만 하러 가는 길

디보카 사르카, prírodni park 1

by 혜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서 있는 것 만으로도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구릉에 서면 바람이 다가온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흩뿌릴 수 있는 곳이다. 걷거나 뛰거나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거나 그 무엇을 해도 그림 같은 곳.

오늘은 이곳에 네가 함께 왔다. 사방이 탁트여 가슴이 후련하다며 너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했지. 나는 오직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주 오는 곳이라 했는데, 특별히 네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색을 냈는데 이곳은 네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곳에선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모든 것을 이곳에서 나누고 갈 수 있을 뿐.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 순간까지의 내 모습인데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큰 환대이기에 늘 고맙고 미안하기도 한 곳, 디보카 사르카!

협곡을 이룬 구릉과 구릉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길 옆으론 다소 탁해 보이긴 해도 개울이 흐르고 편히 걸을 수 있는 곡선의 길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구릉 위에서 내려다보는 길, 아찔하긴 해도 아름답다.

도심 방향을 바라보며 만세를 부른 이 아침을 너는 오래도록 기억하길...
네가 웃으니 나도 좋다,


나는 프라하에서 유난히 이곳을 좋아한다. 따뜻하고 널찍한 아버지의 등짝 같은 곳, 부드럽고 달콤한 어머니의 손맛 같은 바람이 있는 곳. 이곳에서 만큼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내 생각만 하며 뒹굴 수 있어 좋다. 누구를 욕해도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떠한 미움도 용서해줄 마음이 생기는 곳, 나는 네가 이런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일 앉아 있어도 좋겠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것은 내 마음이 먼저 그곳으로 다가가야 가능하다.

아침 일찍 너와 함께 이곳에 올 수 있어서 난 참으로 행복했다. 오랜만에 활짝 웃는 너의 모습을 보았고 다시 아이가 된 듯 어리광스러운 모습도 보았지.

여름을 접고 떠오르는 햇살이어도 아직은 따갑기만 했어. 그래도 아침 바람은 나를 설레게 했고 너를 편안히 감싸 안았지. 자연 생태공원이자 체코가 지정한 국립공원이지만 여행객들은 이곳을 잘 몰라. 대부분 프라하 시내의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동화 속의 마을 같은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하곤 하지. 바쁘게 관광을 하고 프라하를 떠날 때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혹은 택시 안에서 이곳을 지나치며 뒤 돌아볼 거야. 여긴 뭐지? 하는 반응과 함께 이미 지나치고 있을게 분명해. 이곳은 체코의 현지 주민들이 트래킹을 하거나 가족 나들이로 소풍을 나오는 곳인 것 같아. 연인들이 구릉에 올라 협곡의 길을 내려다보며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고 해질 무렵 석양을 바라보러 산책을 나오는 곳.

나는 이곳이 있어 프라하 생활을 무리 없이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유서 깊은 도심의 관광지가 아니고 나를 온전히 품어줄 수 있는 자연이었으니까.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었어. 내 속에 있는 불순한 찌꺼기들, 켜켜이 쌓인 먼지 같은 마음의 때, 숲길을 걸으며 다 녹여내곤 했다. 숙소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성당 하나를 거치고 기찻길 하나를 건너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도 하지. 그렇게 길을 걸어오며 나는 오직 내 생각만 한다. 이번 주엔 내가 무엇을 잘 하고 잘못했는지, 다음 주엔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키며 살아갈 날들을 그려보는 시간을 이 길 위에서 한다. 아마도 프라하에서 살고 있는 동안은 늘 그럴 것 같다.

산등성이에 오르는 순간 마음은 이미 깨끗이 비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