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작가의 산문집

by 혜솔

며칠 전 예약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표지가 차분하면서도 싱그러운 계절의 교실인 듯 깔끔했다. 책을 펼치자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간결하면서 담담한 문체에 80개가 넘는 에피소드마다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단단하게 하고 치유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태도는 독자를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작가가 사랑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넘쳐서 흘러내리고, 때로는 자신을 잠식할 만큼 많은 사랑.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그 사랑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상처가 되었으며, 다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에피소드 '기적을 여는 문'(29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는 과거의 내 모습과 겹쳐지는 듯했다.

사랑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로 인해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저렸다. 몸과 마음이 아팠던 작가, 몸이 아팠던 그 상황에선 마음이 더 크게 아파왔을 것이다. 다 맡긴다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다행히 큰 병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뒤에 작가는 말한다.

"나는 안다. 내 맡김의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 마음결에는 절대 미움이나 원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31쪽)


작가는 잘 견뎌낸 사람이다. 시집살이의 고통, 관계 안에서 무너졌던 몸과 마음, 교사로서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의 삶. 이 모든 순간에서 도망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 견딤은 미덕을 과시하기 위한 인내가 아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스스로를 잃을 만큼 내어주었던 사랑이 결국 자신을 해치기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를 배우고, 거리를 익히며, 사랑을 다른 형태로 꽃 피운다.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의 근원에는 분명한 흔적이 있다. 친정아버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의 결이다. 세상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태도, 타인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 질투보다는 기쁨에 가까운 감정의 방향. ‘헛똑똑이의 삶’ (105쪽) 같은 계산하지 않는 마음이 삶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귀한 윤리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혼은 작가에게 상처를 안겼다. 그러나 그 상처를 원망이나 파괴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아픔을 통과해 이해로, 이해를 넘어 책임 있는 사랑으로 옮겨간다. 특히 에피소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158쪽)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이 산문집의 핵심에 가깝다. 해결하지 못해도, 고쳐주지 못해도,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책을 단단하게 받친다. 그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이 아니겠는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도,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말한다. 사랑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산문집은 그 말의 근거를 삶으로 증명한다. 잘 견뎌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그러나 결코 무겁지 않은 책이다. 읽고 나면 마음 한쪽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사랑을 다시 믿어도 괜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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