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는 곳이 마음도 가는 곳일까.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마르케다 수도원 묘지 앞을 지나고 있었다.
무의식의 산책 속에 책 한 권쯤 묶어 낼 사유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그리움이라 해두고 싶다.
그리움의 얼룩은 시간의 무늬로 남겨지고 나는 그 시간을 거리에 풀어 사유를 만들면 된다.
묘지 안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얼룩져있을 듯했다. 작은 풀꽃부터 커다란 조화까지 한데 어우러져 망자들의 마을을 가꾸어 놓은 듯 환 하다.
묘비에 새겨진 짧은 글귀처럼 이들의 생도 간결하였을까. 생년월일과 이름이 새겨진 묘비의 모양도 다양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프라하의 묘지'를 떠올리며 천천히 묘비와 묘비 사이를 걸어본다.
음산한 프라하의 공동묘지에 모인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는 이야기를 날조하고 위서를 만들어내는 주인공. 소설 속 인물 시모니니가 바라본 세계를 나는 보지 못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안의 우리들, 정작 접하고 있는 것이 진실된 정보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시모니니 같은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세상이 현실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수많은 사건들 속에 존재하는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인간세상의 역사에 나는 관심 가져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묘지 안의 주검들은 말이 없다.
살아있는 동안에 휩싸였을 어떤 음모나 억울함에도 또는 살아있는 동안에 행해왔을 거짓이나 위선에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의 눈에 보이는 평화롭고 아늑하기까지 한 묘지 안의 주인공들일뿐이다.
물조리를 들고 지나가는 여인의 뒤를 가만히 따라가 본다. 여인은 어느 묘비 앞에 심어놓은 작은 장미나무에 물을 준다. 그런 모습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웃옷을 벗어 묘비 앞에 펼쳐놓고 앉아있다.
여인은 무어라 혼잣말을 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을 읽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멀찌감치서 여인을 바라보며 노트에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