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들.
그 말의 무게를 알기에 차마,
“아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인사치레조차 하지 못하는 나.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쪽방촌 사람들과 마주했다.
취약계층 주거지원금을 따박 따박 받아가면서,
받는 월세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주거환경에 거주자들을 방치하는 집주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삶의 터전이기에 꾸역꾸역 살겠다는 사람들.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다.
계속 이 형국이 유지될 것 같다.
이해관계가 첨예해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솔직히 무엇이 제대로 된 정책인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해답도 낼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처한 삶을 그냥, 귀 기울여 들었다.
체념했지만 견딜 수 없는 것
이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많은 것을 이미 체념했을 것이다.
포기하고 체념했음에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것,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좁은 공간, 그 자체다.
좁은 공간 가운데 들리는 소리들.
어디에서 왜 들리는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소리들.
그런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노이로제에 걸리게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굶어죽지는 않는데 방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요”
쪽방촌이 아니더라도 최저주거기준을 지키지 않고 사고 팔리는 방들이 많다.
경험상 그런 주거공간은 사람을 우울하게, 작게 만들고, 갉아 먹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환경을 갖추도록 의무화해야 해!
주거 공개념!
생각은 하지만 가능할지,
당장 공급이 막힌달지 하는 반대급부는 없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나도 그때 그랬으니까.
보증금도, 높은 월세도 낼 수 없는데 거길 떠날 수 없었으니까.
우울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들어가 살았으니까.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고, 그렇게 그런 생활상이 유지된다.
체념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
쪽방촌 사람들이 만든 공동의 비빌 언덕,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함께 모여 소박하게, 복작복작, 참 많은 일을 한다.
천원, 이천원 내어 저축도 하고 급전도 빌려주는 상호부조(공제)협동조합.
돌아가신 분 외에는 떼먹는 사람이 없다.
생을 마감한 분의 방을 청소하고, 같이 장례를 치러 준다.
마을 청소를 하고, 축하선물을 주고 받고, 미얀마에 보낼 쿠키를 함께 만든다.
한푼 두푼 모아 추석, 어버이날 행사도 가진다.
생활필수품도 공동구매해 싸게 사고 판다.
임대주택으로 이사 간 사람도 다시 이곳을 찾는다.
놀러!!
낮에는 여기서 놀고, 잠을 자러 돌아간다.
갈 데까지 갔다는 사람들,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미소짓게 만드나.
무엇이 그들을 즐겁게 만드나.
관계다.
사람이다.
좁은 공간은 견뎌도, 마음의 외로움은 견딜 수 없다.
그건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비빌 언덕을 찾는다.
사람의 행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관계다.
사람이다.
사랑이다.
나이가 들어 쓸모없어지고, 병들어 짐이 되고, 무일푼이 되고, 능력이 없고, 세상에 혼자 남겨져도,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누구나,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일 아닐까.
존중을 주고받고,
사랑을 주고받고,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아파트에 있으면 관계 맺기가 힘들어요. 보는 눈초리도 매섭고,”
“사는 주민이 원하는 대로, 고쳐주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요.
고치는 저를 보고 있어요. 보면서, 웃고 있어요.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말은 필요 없어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예요.
투닥거리면서 진심이 와 닿는 거에요.”
“남는 게 뭐 있어요. 주민들 마음 사는 게 남기는 거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_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