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열정, 다정한 위로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보고 나누기
벌써 2달째 류이치 사카모토 앓이 중이다.
뉴에이지계 거장이라 불리는데,
솔직히 뉴에이지보다는 클래식을 주로 들어서 잘 알지는 못했다.
영화 <괴물>의 OST를 만든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작년 3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 콘서트를 담았다기에 개봉 다음날 바로 보러 갔다.
영화는,
너무 아름다웠다.
구구절절 일대기 설명하고 그런 거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만 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설명하는 말 섞었으면 화냈을 것 같다.
그냥 피아노를 더 쳐줬으면 좋겠다.
시작부터 연출이 미쳤다.
조금 앞에서 들려오는 연주,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먼지들,
멀리서부터 뿌옇게 피아노 치는 뒷모습에 다가가 클로징한다.
거장의 눈빛, 손등의 주름, 핏줄 하나하나가 생생히 느껴진다.
섬세히 다정하게 담았다.
그가 얼마나 정성껏 한음, 한음, 내딛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상이 너무 감각적이다.
안경에 피아노 건반이 비춰 보이고,
안경 사이로 드문드문 눈빛이 보였다가 사라지는데,
눈빛이 너무 뜨거웠다.
진심을 다해서 한음 한음에 감정을 오롯이 쏟아내는데,
그렇게 내는 소리는 너무 다정해서,
그 갭이, 그 다정함이 좋아서 눈물이 났다.
계속 울고 있었지만ㅋㅋㅋㅋ특히 울컥한 부분이 있었는데,
막 열심히 치다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찍자고 하는 부분이 있다.
길게도 말하지 않고 탄식하듯, 한마디 툭 내뱉는데,
몸은 기진맥진해 보이는데, 눈빛이 너무 뜨거웠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생생히 살아있는 눈빛이었다.
그 뜨거운 열정에 눈물이 났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쏟아냈다는 게,
그걸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영상이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서,
영상 자체가 감성을 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옛날 일본 로맨스 영화 특유의 따듯한, 화이트 톤의 정갈한 그 느낌,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 감성이 느껴졌다.
피아노 소리와 함께 주변 사물들이 클로즈업 된다.
연필, 공책, 의자…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말끔하고 정갈한 느낌의 사물들.
사물과 그림자.
뒷 목덜미,
머리카락,
얼굴의 클로징.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
까만 피아노에 비치는 손.
작은 발로 밟는 페달.
일상적인 것들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영화와 영상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연주는 당연히 직접 듣는 게 더 좋았겠지만,
연주하는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하게 뜯어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감각적인 영상이 분위기를 더해, 음악과 영상이 세트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진정한 뮤직비디오 아닐까.
연주 뿐만 아니라 영상 자체를 소장하고 싶어졌다.
중간에 빨래집게 같은 것ㅋㅋ으로 피아노 줄을 잡아서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무척 신기했다.
음이 나가는 것 같은데 조화롭기도 한 것이 뭔가 이상해지는 기분.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눈부신 연주와 영상 덕분에 103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울었다.
끝나고도 여운이 남아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나와서도 1시간쯤 영화관 구석에 앉아 여운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여운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온 정력을 다해 한음 한음 내딛는 사람.
나도 저렇게 순간 순간 살아내고 싶다.
그냥 살기 아쉬워서 이러고 있는 것 같다.
감동 가득,
뜨거운 눈빛,
따스하고 다정한 연주였다.
이후 두 달간 매일같이 들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들도 그러했다.
절절한 열정,
다정한 위로.
그는 그런 음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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