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못 하게 불안한 상태
매일같이 불안하다.
예기치 못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최악을 생각한다.
며칠 전, 엄마가 저녁 10시쯤 갑자기 전화를 했다. 이미 한국은 자정이 다 되었을 때라, 엄마가 전화할 리가 없는데, 왜 전화했지? 그때부터 불안함으로 가슴속 심장이 요동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가 갑자기 토하고 난리네. 지금 응급실 갈게. 엄마가 응급실 가서 전화할게."
멀쩡한 아빠가 갑자기 아프다는 소리에 그때부터 심장이 난리가 났다. 온몸이 새파랗게 질렸고, 양손 끝은 파르르 떨면서 당장이라도 택시를 뛰쳐나가야겠다는 무모한 생각이 온 신경을 잠식했다. 아빠가 어떻게 되면 어쩌지? 란 생각이 선두로 달려 나가버렸다. 결국 나머지 생각, 상상 그리고 가능성들은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라잡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으로 머뭇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극도의 불안함이 완전히 지배할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삐'하고 마치 미쳐 날뛰던 심장이 마지막 발악을 한 채 사망선고하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때부터는 택시의 깜빡이 소리도, 도로의 오토바이 소리도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두 눈의 동공은 완전히 풀어져버린 그 상태로 몇 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사이, 엄마가 다시 전화했다.
"아빠 몸속에 돌이 있는 것 같대. 지금 혈액검사하러 들어갔어. 아빠 나오면 연락할게."
10살도 채 안되었던 어느 날 아빠가 회사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단 소리를 듣고, 엄마, 나, 동생이 엄청 놀래며 부리나케 병원을 간 적이 있다. 은행에서 차장 직함을 달고 있던 아빠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 세 여자들을 놀라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때도 신장결석으로 입원했었다.
아빠는 워낙에 외골수에 한 번 집중을 하면 웬만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다. 고도의 집중력이 어떤 사람에게는 신체적 건강을 갉아먹을 만큼 악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빠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참 유전이라는 게 무서운 것인지, 나도 비슷하다. 집중을 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막상 집중을 하는 활동을 시작하면 5시간이고 6시간이고 꼼짝없이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골똘히 신경을 쓸 때가 많다. 엄마는 이것을 '병'이라고 칭한다.
엄마랑 통화를 하고 나서도 아빠가 행여나 어떻게 될까. 평소에는 냉소적으로 '신은 죽었다'며 니체를 옹호하던 나 자신이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게 기도한다. 엄마가 선물한 묵주팔찌를 빼서 간절히 마치 주문을 하듯 기도했다. "제발 아빠를 아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그렇게 오밤중에 3시간 동안 엄마와 함께 기다렸다.
그러자, 드디어 온 전화. 아빠였다.
"아빠 이제 괜찮아. 미안해. 몸속에 돌이 있대."
아빠는 웬만한 고통은 잘 참는 편이어서, 어디서 다치고 찢어져도 잘 모를 정도로 둔감하다. 이런 미련한 곰 같은 아빠가 구토를 하고 아파서 떼굴떼굴 구를 정도면 얼마나 아팠을까.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만약 가까운 데 살았으면 어떻게든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병원을 데리고 갔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아빠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수동적으로 바라는 이 무력감이 불안함을 데리고 왔다.
이 불안한 마음이 디폴드값으로 정해져 있는 나란 인간은 매사 최악을 생각하는데, 왜 나도 이렇게 최악의 상황만을 상수로 상정하는지 모르겠다.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바로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도대체 뭐가 행복한 건지, 그리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꼭 느껴야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모든 마치 정답 같은 심리의 개념들을 왜 느끼려고 아등바등하며 억지로 흉내라도 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빠가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제발 내가 아파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좋으니, 부디 누군가 한 줌의 재로 사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부모님과 내 형제가 아닌 나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도무지 이런 마음은 왜 곧바로 드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불안함이 만든 인격체라고 생각한다. 불안해서, 이만큼 살고 있고, 불안해서 그나마 노력이라는 것을 한다. 스스로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절대적인 양 이상으로 노력을 했고, 집요하게 무엇을 하든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정의를 만들 때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내재되어 있는 불안함으로 도무지 안심하거나 진정할 수가 없다. 맥박수는 평균 100 이상이다. 그러다가 한 번씩 완전히 심박수가 낮아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세상의 모든 스위치가 다 꺼져 지구가 마치 정전된 것처럼 내 머릿속이 암전 될 때도 있다.
틈을 만들면 자꾸만 풀리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 연쇄적 생각 속에서 100가지 넘는 경우의 수를 만들고,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함으로 심장을 바싹 태우고 스스로 애간장을 녹이는 심리적 자해를 한다.
어찌 되었든 불안하지 않을 때의 나는 이상하게 어색하기도 해서, 심장이 성가시다고 아우성을 쳐도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불안함이 다른 일로 파장을 미치거나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불안한 것은 내가 언제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라는 말도 필요 없이 당연히 희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서가 아닐까. 불안함이 잠식한 나란 인간은 한시라도 생각을 멈추면 세상을 살아갈 의미와 용기가 없다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불안함을 이겨먹든 졸업을 하든 아니면 그냥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업고 살든 어떻게든 내가 마주해야 할 숙명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