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기록의 즐거움 : 나의 오랜 벗이 될 새로운 습관을 환영하며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읽는 사람들이라면 책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의 독서생활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서점 베스트 매대에 예쁘게 누워있던 해리포터 시리즈로 시작되었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몰입해서 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오는 날이면 서점 앞에서 아침부터 함께 줄을 서 기다리기도 하고, 꾸준히 한 권씩 전권을 사모아서 애정을 담은 나만의 책장을 가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고학년이 되자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사건>과 같은 소설을 읽으며,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울고 웃으며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최인호 작가의 <상도> 시리즈를 시작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모든 소설을 읽어보는 매니악한 취미를 터득하기도 했다.
사춘기부터는 인간의 다양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표현하는 일본문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시작으로 장르 가리지 않고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20대부터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시작으로 주로 프랑스 문학에 빠져 살았다.
나의 독서습관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적막한 고요가 있는 공간 또는 백색 소음이 좋은 곳에서 편한 의자에 앉아 아늑한 조명아래 편안하게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다 와닿는 구절에 멈춰 선 몇 번이고 다시 글귀를 읽고, 시간이 지나 또 그 책을 읽고 곱씹으며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 책을 향유했다.
적어도 20대까지는 그렇게 책을 향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스스로를 마음의 토양이 넓고 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든 내 마음에 찾아와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또는 얕게 자리 잡고 넓게 퍼져선, 서로의 존재를 나뭇잎 부대끼듯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었다. 마음의 여유를 비옥하게 가진 그런 내가 좋았다.
내 마음속 토양의 원천은 그간 내가 읽고 쌓아온 독서라고 생각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평화롭던 내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이고이 쌓아온 정서적 자양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의 마라맛 큰 시련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삶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생기 넘치던 마음속 반짝반짝함을 점점 잃어갔고, 평범하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독서의 즐거움을 잊고 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코앞에 닥친 현실적인 큰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득 ‘그때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자책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시작될 때쯤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잦게 ‘과거의 반짝이던 나‘가 생각나기 시작했고,
턱끝까지 울렁거리는 마음을 뱉지 못해 목이 아프게 막힐 지경에서야 더 이상 나를 잃고 싶지 않았고 나를 찾고 싶어졌다.
절박하고도 꽤 간절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읽고 싶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나 예전 같지가 않다..?‘
’ 예전에는 책 한 권을 들면, 온 영혼이 책의 모든 양분을 빨아들이듯 마음 깊은 곳까지 흡수하는 것만 같았는데 말이야..‘
책을 순수하게 몰입하기엔 난 조금 낡았고, 상처받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반짝이던 내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간, 오랜 시간 책을 손에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책을 마치 상비약처럼, 손과 가방에 수시로 들고 다니며 재미있게 잘 읽어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독서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자, 나는 다시 독서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꽤 오랜 사회생활로 '목적'과 '동기'가 충분해야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 방법은 바로 <독서를 기록하는 것>이다.
영혼이 맑고 반짝이던 시절에는 ‘책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양분이 되어,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흔적을 남기고 필기를 해둬야, 잊지 않고 기억해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는 '불안정한' 현대인이 된 것이다.
나의 <독서 기록>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흔적처럼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다. 먼저 글을 읽고 와닿았던 문장들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 뒤, 그 문장을 기록 노트에 옮겨 적어 그 책을 기록했다.
독서의 즐거움의 방법을 찾던 중 유튜버 <기록 친구리니>님의 독서노트 필사 영상*을 보고 시도해 본 방법인데, 나에게는 독서를 즐기는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 독서 노트 필사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1. 좋아하는 문장들을 체크해 둘 것.
2. 종이 딱 1장. 노트를 펼쳤을 때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을 선정해 간소하게 적을 것.
덧붙여, 나는 이 규칙에 아름다운 필체나 꾸밈은 생략하고, 나만의 필체로 책에서 좋았던 문장 기록을 적어두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 기록이 좋았던 점 중 하나로, 책을 읽다 보면 순간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로 표시된 포스트잇이 잔뜩 늘어나게 된다. 독서가 끝난 뒤 포스트잇으로 표시된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보면, 이 책을 읽을 당시 나의 마음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어떠한 감정의 동요가 있었고, 어떠한 마음으로 그 글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마음의 결핍과 동요된 상태를 인지하고 내면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 예로, 나는 첫 책으로 양희은 선생님의 <그럴 수 있어>를 노트에 필사했다. 문장을 수집을 하다 보니 꽤나 비슷한 느낌의 문장을 많이 수집하게 되었다. 이것을 다시 필사하며 옮겨 적는 과정에서, 나는 그 책을 읽을 당시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지금 이곳에 없어서 상당히 외로운 사람이었구나.’를 자각하게 되었다.
한 장에 적을 만큼의 좋아하는 문장을 선정한 뒤에는, 온 신경을 손으로 글을 쓰는데 집중해 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긴 호흡으로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회생활하며 인적 정보란에 <집 주소> 적는 것이 가장 긴 손 글쓰기였던 내가, 삐뚤빼뚤 나의 필체로 책의 문장을 옮겨 적다 보면, 순간 글씨가 휘어지고 엇나가는 구간에서 ‘지금 내 집중력이 흐틀어졌구나’를 알게 된다. 그러면 다시 글쓰기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금세 오탈자를 만들고, 한 페이지와 어울리지 않는 구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미적으로 완벽한 한 페이지에 집착하지 않고, 완성에 의미를 두고 고치지 않고 글을 이어나간다.
이 과정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나의 실수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신경 쓰지 않는 법을 배워 나간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독서가 그 자체로 즐거워졌다.
불편했던 모난 내 마음을 닮은 문장을 글로 쓰면서 마음의 생채기가 조금 가벼워졌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을 만난 반가움에 외로움을 조금 잊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다시 시작했던 독서가, 다시 즐거운 취미가 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지니, 책의 문장들이 더욱 반갑고 재미있게 느껴지고, 빨리 독서노트가 쓰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 행복하다! 저 요즘 다시 즐거워요!’
어느덧 나는 다시 하고 싶은 것이 넘치고,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삶에서 읽는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으신 분들,
<독서노트> 만들어보는 거 어떠신가요?
* 유튜버 <기록친구리니>님의 ‘필사의 기초, 필사 노트 소개, 필사 방법, 필사의 매력’ 영상을 참고해 독서노트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