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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18. 2024

답장하지 못한 마음

아팠던 낯선이에게서 받은 큰 위로

두 달간 집을 비웠다.

가득한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떼를 벗겨내고 쌓아둔 물건들을 모두 헤집어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올해 초 편지샵에서 가져온 펜팔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편지 봉투에는 단 두 단어만이 보낸 사람을 말하고 있었다.


‘행복한 우울증’


편지 교환을 하는 매대 위에 있던 다른 편지들은 새 주인을 찾아가고, 혼자 오랜 시간 그 매대를 지킨 편지였다.


처음엔 망설였다.

그 편지 안의 이야기가 너무 무거우면 어쩌지?

내가 돌려주지 못하는 진심이면 어떻게 하지?


감수성이 예민한 편인 나는 항상 상대가 진심과 마음을 주는 만큼, 진심을 다해 돌려줘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쉽게 가진다.


조금 망설인 끝에 그 사람의 편지를 읽어보았다.

꾹꾹 눌러쓴 소탈하고 작은 글씨체에 검은 펜으로 한 장 빼곡히 적힌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그는 굉장히 힘들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세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적혀있었다.  그걸 이겨내려 노력했고 이제 그 어둠의 끝에서 다시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픈 뒤에야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고 이 자체가 행복인 것 같다는 개인적인 깨달음이 담긴 편지였다.




날이 무척이나 추웠던 올해 1월의 어느 날, 나는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고, 직장 생활도 대인관계도 자신감이 넘쳐흘러 온 세상이 '이제 내가 웃을 차례'라고 축복해 주는 것만 같던 순간이었다.


그때 그 편지를 봤을 때, 그의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긍정의 기운을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답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답장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슬픔이 무척 커 보였고, 섣불리 말을 건네기엔 혹시나 또 내 경솔한 마음이 그 사람에게 다른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작년부터 이어지던 늦은 겨울을 지나, 봄이 올 무렵부터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그간 너무 행복했던 탓일까?

세상이 나를 시샘하듯 나쁜 검강건진 결과와 함께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봄이 채 가기 전, 초 여름엔 불운한 사고로 두 번의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꼬박 두 달간의 병상생활을 정리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초부터 차곡차곡 버리지 못한 미련처럼 쌓아둔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렇게 그 사람의 편지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그때는 그저 아프고 슬펐던 사람의 담담한 편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본 그 편지의 내용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편지 구절마다 마음으로 울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을 그 사람이 알아주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다 보일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에 힘을 내라고, 나도 잘 이겨냈으니 너도 힘내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 사람에게 답장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고맙다고, 당신의 아픔 그리고 이겨내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 말이 나에게도 희망이 되었다고.

꼭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올해 초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 가장 아팠던 사람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지금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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