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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01. 2024

나를 어여쁘게도 아끼는 방법

다시 나를 잘 쌓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발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이어 발바닥을 땅에 잘 붙여 체중을 실어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뒤엔 집구석구석 창문을 연다. 밤새 쌓인 공기가 잘 순환되도록.

커튼을 살짝 걷어 햇살을 바라본다.

그리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쁜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서 따뜻한 물을 천천히 마신다.

이것이 요즘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무리에서 버려진 느낌.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나다운 좋은 것들은 모두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면들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자책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기운이 없던 마음엔 달고 시원한 커피를 들이부었고, 조금의 여유도 없던 조급한 마음엔 더 바쁜 업무로 나를 몰아붙였다. 그런 여유 없던 마음도 몰아내고 싶어서, 지금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나는 제대로 생활하고 있지 않은 거니까.


그런 일상들이 몇 년간 쭉 이어졌다.

상관없었다. 나는 이제 나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이었고, 나에게 남은 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직장과 업무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줄기차게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이 건전지처럼 배터리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터리처럼 불타거나 터져버리진 않지만 나 스스로가 주는 방전 신호가 있었다.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질 수도 있고, 마음이 우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서는 방전 신호를 조금 놓쳤다고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사소하고 흔한 일상적인 감정이라 휴식이 필요함을 인지하기 어렵지만, 수시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배우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마음의 방전 신호

집에 쉬는 날 혼자 있을 때, 마음 편히 쉬지 못할 때, 그리고 잠을 청할 때 금방 잠에 들지 못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음식 맛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취미 후, 마음이 여전히 개운하지 않을 때.


일상 속에서 한 가지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 기저에 항상 은은한 불안감이 느껴진다면 이제는 조금 쉬어야 할 타이밍이다.

나는 나의 이런 방전 신호들을 무시했었고, 방전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대가로 6개월가량을 죽은 사람처럼 멍하게 지냈다.


‘이대로 나 평생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가끔은 내가 너무 변해버려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지기도 했다.

나를 스쳐 지나간 과거의 상처들이 드문드문 나를 아프게 찔러왔고, 지금의 나는 다 놓아버렸음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어리석은 스스로에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사람은 매일 숨을 쉬며 변화해 가고 적응해 갔다.

지독하게 억눌렸던 마음속 괴로움을 있는 힘껏 꺼내 온몸으로 맞았더니, 어제보다는 오늘이 덜 아팠고 참을 만해졌다.

조금씩 산책시간도 늘려나갔고 서서히 힘들었던 생각 뒤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를 되물어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도 흥이 나지 않았던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다시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진짜였네?

지나치게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던 예전의 나는, 휴식도 힘든 것을 이겨내기 위해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침내 휴식은 해결 방법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버티고 있는 그곳과의 결별과 같은 ‘온전한 차단’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나를 방전시키지 않기 위해,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자주 나를 자주 충전할 수 있는 작은 규칙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달달한 노래 제목같이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바로 ‘나 사용법’이다.


<나 사용법>

아침에 일어나서 온수와 냉수를 반반 섞은 미온수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일어나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적어도 10분이라도 채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꼭 하고 싶은 사소한 목표라도 1개 만들어본다.

아침엔 질 좋은 계란 1알과 제철 과일을 꼭 챙겨 먹는다.

모든 식사는 꼭꼭 씹어 천천히 섭취한다.

하루에 30분 정도는 밖에 나가서 걷고 햇볕을 쬔다.

자기 전에는 꼭 마지막으로 독서를 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침대에 일절 들이지 않는다.

* 주의 : 이 모든 것을 여유 있게 수행하지 않으면 본체가 고장 날 수 있음. 섬세하게 다루세요.


다소 건강프로에 나올법한 규칙들 같아 보이지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도 너무 많을 필요 없이 딱 7개는 평생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루는 매뉴얼을 만들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고 있다.

사소한 습관들이지만 아침에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보고 건강해지는 습관을 가지니, 피로감이 줄기 시작했고 그만큼 조금 더 체력이 생기니 마음이 천천히 편안해졌다.

이렇게 하루 중 평온한 순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한 셈이다.


인생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또 언제 이 잔잔한 고요가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 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음에 오는 파도는 조금 더 건강한 서퍼가 되어서 이번엔 좀 더 멋지게 제대로 잘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보니,

저는 이제 다시 잘 살아갈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저랑 같이 멋지게 인생 파도 타실 분?

나가이 히로시 Hiroshi Nagai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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