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도, 후회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꽤 감정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느낌이 오고 마음이 통한다면, 즉흥적으로 성급하게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운 좋게 그 결정이 내 삶에 예상치 못한 드라마틱한 결말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살아왔기에, 가슴의 스파크가 뛰는 선택이 대부분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 신념만큼이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꿈에 도달하는 것을 큰 목표로 두고 살아왔다.
가슴 뛰는 꿈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일까?
오늘은 꼭 나처럼, 자아를 실현하고 성장하는 것을 간절하게 열망하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기 디즈니 픽사의 영화 소울(Soul, 2020)의 주인공 조 가드너가 있다.
이름은 조 가드너. (이하 조)
중학교 정규직 음악 교사.
가슴속 스파크는 ‘나를 나답게’ 만들고 몰입할 수 있는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꿈은 어릴 적부터 선망해 온 공연장 <하프 노트>에서 공연하는 성공한 재즈 뮤지션이 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룬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스스로 단언할 정도로 열망하지만, 오늘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옛 제자로부터 프로 오디션을 제의받고 단번에 합격했다.
드디어 그날 밤, 그는 그토록 바라던 꿈의 무대 <하프 노트>에서의 프로 데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돌아가는 길, 너무 신이 나 흥분한 그는 미처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대로 맨홀 구멍에 빠져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삭막한 뉴욕의 꽉 막힌 지하철 출근길, 자아실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권태로운 직장 생활 속에서도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가던 주인공이 마침내 꿈을 이루는 순간, 그의 말처럼 ‘당장 죽으며’ 시작한다.
‘새 인생을 시작하는 날 죽을 순 없어!’
광활한 우주의 한복판, 이곳에 자동화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는 ‘머나먼 저세상(죽음)’이 존재한다.
영혼이 ‘머나먼 저세상’에 도달하면 전기 파리채에 파리가 죽을 때 나는 짧게 전 기타는 소리와 함께 영원히 사라진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존재의 실종’인 죽음을 겸허하게 기다리는 영혼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고 직후 죽음 이 대기 줄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조는 필사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도망쳐 나온다.
죽음 벨트를 간신히 벗어난 조가 도착한 곳은 바로 ‘태어나기 전 세상’
‘태어나기 전 세상’에는 갓 태어난 영혼들이 가득하다. 이곳의 다양한 교육을 통해 영혼들이 각자의 성격을 형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이미 죽은 ‘유명한 위인 영혼’을 멘토로 만나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을 통해 지구 통행증을 얻게 되면 영혼은 비로소 지구에서 태어나게 된다.
조는 이곳에서 자신의 신분을 위인 멘토로 위장한 채, 다시 태어나기 위해 수백 년째 연습 중인 골칫덩어리 22를 만나게 된다.
22는 수백 년간 태어나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양한 위인들을 멘토로 만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했지만 22에게는 딱히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가 되지 못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태어나길 거부하는 22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죽고 싶지 않은 남자 조 가드너.
조 가드너가 위인 멘토가 아닌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온 별 볼일 없는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22는 왜 그가 지구로 다시 돌아가기를 이토록 강렬하게 원하는지 궁금해져 그의 영혼 환생을 돕게 된다.
그러나 환생의 작은 실수로 22의 영혼은 조가드너의 몸으로, 조의 영혼은 중환자실에서 조를 치유 중이던 고양이에게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22는 조의 몸을 빌려 지구에서의 짧은 삶을 체험하게 된다.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우여곡절 끝에 조는 자신의 몸을 되찾고, 그가 그토록 서고 싶었던 <하프 노트>의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첫 공연 데뷔를 하게 된다.
공연이 끝난 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축하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돌아간 뒤 쓸쓸한 길에 홀로 남았다.
알 수 없는 공허함.
이상하다 드디어 당장 죽어도 좋을 정도로 간절했던 꿈을 이뤘는데 마음 한편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온다.
조가 물었다. “다음은 뭐죠?”
함께 공연한 뮤지션이 대답한다.
“내일 밤 다시 와서 또 하는 거지.”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상상하던 기분과 좀 달라서요. “
그녀가 대답했다.
예전에 물고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젊은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가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조는 가슴 뛰는 목표의 다음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목표를 이루면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았는데, 목표를 이뤄도 조의 삶은 계속된다.
사실 열정적이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멋진 목적 없이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조, 내 불꽃은 하늘 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 나 잘 걷잖아.
- 그건 목적이 아냐 22, 그건 그냥 사는 거지.
22는 짧은 지구 생활을 하며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난생처음 먹어본 페퍼로니 피자의 진하고 고소한 풍미, 두려웠던 나를 위로해 준 친구의 다정한 막대사탕, 햇살 가득 담은 노란 단풍잎 사이로 눈처럼 떨어지던 단풍나무 씨앗 하나..
그 순간 22의 마음속에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구별 티켓이 생겼다.
살아가기 위해선 큰 목표가 없어도 된다.
삶을 재징(jazzing) 하듯 사는 거지.
그 순간순간을 잘 살아나가는 것.
그리고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대로 살아갈 이유가 되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가 극심하던 2020년의 겨울, 나는 미술 계통으로 이직을 위해 다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시험이 비대면 과제로 대체되었고, 한 해 동안 23개가 넘는 과제를 작성하며 나는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찾아왔고, 목적을 향해 1년간 달려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당시 제주도는 코로나 최고 단계의 격상으로 상점가는 9시면 문을 닫았고, 많은 눈이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다. 때마침 그 시간에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영화관이었고, <소울>이 상영 중이었다. 평소 픽사 영화를 좋아해, 제주여행 최초로 나는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학기말까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30대 초반에 많은 것을 희생하며 지쳐있던 나에게 영화 소울이 던진 메시지는 그야말로 큰 위로로 다가왔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을
삶의 지향점으로 선택하고 달려왔는데,
사실 그건 내 삶의 극히 일부라는 걸..
학기가 끝난 뒤의 허전함.
원하던 기관에 취업했을 때의 기쁨과 이어지던 허탈감.
내 삶의 수확의 순간마다 찾아오던 공허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영화 소울을 찾는다.
삶을 재징(jazzing) 한다는 건 뭘까?
재즈처럼 삶을 즉흥적으로 살아나가는 거지.
흐린 날엔 내리는 비와 날씨를 즐기며 커피를 마시고, 햇살이 좋은 날엔 팔소매를 걷고 흡수되는 비타민 D를 온몸으로 만끽해. 바람이 부는 날엔 나뭇잎 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마음껏 걷곤 해.
사실, 잘 산다는 건 큰 목표가 없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니 목적이 없어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설령 그 선택으로 인해 후회해도 나는 괜찮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지구별 여행 하듯 살아가는 22처럼 주어진 하루를 그저 만끽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