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도시에서 나의 삶을 지탱하는 오아시스, 다정함에 대하여.
지방 출신인 나는, 십여 년이 넘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대도시 사람들의 차가움을 아직까지 적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의 지방 정서가 무척 상냥하거나, 친절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방의 정서가 한 다리만 건너면 가족 소식까지 알 수 있어, 다소 타인 간의 정서적 거리가 좁고 쉽게 다가간다면, 그에 비해 서울에서는 개인 간의 거리를 존중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물론 이런 환경적 요인에는 타인을 위한 배려의 마음도 작용하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지는 이곳에서는 약간의 경계와 거리 유지는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그래서인지 내가 느낀 대도시 사람들은 혹시 모를 오해로 타인과 스스로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금 덜 웃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고 표현에 신중을 기한다.
반대로 대도시 사람이 지방에 내려가면, 이곳 사람들의 '불쑥' 쉽게 다가오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가까워지는 행동에 낯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종종 깜빡이나 거리 유지도 없이 다가오는 상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 느끼거나 혹은 상대가 '무례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정서 차이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대도시 사람들의 이런 배려와 절제를 종종 차갑고 쌀쌀맞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나 역시 매일 아침 이름 모를 타인들과 몸을 구기며 향하는 전쟁 같은 출근길을 해내며, 밥 한 끼 줄 안 서고 먹기 힘든 복잡한 이곳 생활 속에서 이름 모를 이에게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행동은 '굉장히 자주 소모적으로 느낀다.'는 이유로 타인을 향한 마음의 여유를 자주 잊기도 했다.
제법 새침해진 내 모습에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은 서울깍쟁이가 다 되어 간다며 나를 놀리기도 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프랑스 소도시에서 살던 시절에도 왕왕 파리에 가면 느꼈던 감정으로, 서울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 부대끼며 지내는 대도시의 정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방에서 온 나는 다정다감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꽤나 다정한 사람으로 자랐다. 친, 외가 가족들이 모두 굉장히 외향적이고 다정한 편이라 집안 분위기 자체가 밝고 위트가 있는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엔, 나는 지방 사람 중에서도 다정한 사람에 속하는 편이다. 마음의 여유가 꽤나 풍족했던 나는 지방에서도 꽤나 너그러운 편이었고 타인에게 상냥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올라온 첫해는 세상 물정을 몰라 혼쭐나기도 하며,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
이곳 대도시 생활은 시골쥐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엔 너무나 복잡하다는 이유로 애써 변명하며, 그렇게 선천적으로 기질이 다정했던 나는 조금씩 ‘다정함’을 잊어갔다.
나다움을 잊고 맞춰 나가기 바빴다. 이곳에서는 가족과 친구가 없기에 도통 나의 타고난 ‘다정함’을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약간의 무관심, 감정의 절제, 목표를 향해!’
상처받지 않는 성공적인 서울 살이를 위하여, 마음속엔 이런 시크한 마인드를 표어처럼 새기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전진하는 삶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도, 종종 운이 좋게도 이름 모를 이들로부터 뜻밖의 다정함을 선물받기도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리가 불편해 걷기 힘들던 나의 장 보기를 선뜻 도와주셨던 아주머니.
유난히 힘들었던 날, 지친 나의 눈을 다정하게 쳐다봐주며 힘내라고 격려해 주던 다정한 이의 한마디.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쳐다보진 않지만, 무거운 문을 잡고 기다려주던 남성분의 잠시 멈춘 발길...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나는 용기 있고 대담한 마음을 가진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들이 모여, 나는 이곳에서도 다정함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멋진 강인함을 배우고 싶어졌다.
선천적으로 다정한 사람과 후천적으로 다정함을 지켜나가는 사람. 둘 중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다정함을 놓지 않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밀림같은 대도시에서도, 타인을 향한 온정의 마음을 잃지 않는 강하고 멋진 마음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지금 나에게도 외로운 도시 생활 속에서 다정함을 뽐낼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출퇴근길 집 앞 길목에서 장사를 하시는 단골 떡볶이집 사장님과 나누는 상냥한 안부인사.
단골 빵집 사장님의 친절한 배려에 감사하기.
우리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털이 보들보들한 토박이 길 고양이들과 눈 맞추며 인사 나누기.
일을 하며 편해진 직장의 동료들과의 소소한 대화.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나의 베프, 소중한 남편과 함께하는 시시콜콜한 모든 순간.
매일 눈을 맞추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것이 오늘도 나를 이곳에서 살아가게 한다.
대도시 살이를 통해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하고 자리 잡은 시골쥐가 되었으니, 용기를 내어 나와 마주하는 이름 모를 타인에게 조금 더 다정하자.
그렇게 대도시에서도 꽤 다정한 아줌마가 되고, 훗날 시간이 흘러 다정하고 상냥한 할머니가 되기를.
나의 성장한 다정함이, 이 커다란 도시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하루를 버틴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