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갈 용기

예술을 전공한 예비 프리랜서 지망생의 넋두리

by 안나 Anna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냐.

그건 너의 욕심이다

세상에는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선언 뒤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뭐, 이제는 거의 고정 레퍼토리나 다름없다. 처음 위 문장을 들었을 당시에는 괜한 반항심이 일어 그들의 말에 일일이 반박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반박의 대부분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그들의 말에 대응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이 편이 나에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애정하는 ‘이야기’와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여 일과 접목할지 연구하고 있다. 나를 더 성장시키리라는 원대한 포부로 시작했던 1년의 휴학 생활도 며칠 뒤면 끝이다. 예술 대학 학생으로, 그것도 졸업을 앞둔 4학년 신분으로 다시 살아가야 한다. 학과 동기 친구 중 몇몇은 이미 졸업했거나 취직을 준비 중이거나 대학원에 갔다. 창작 팀을 꾸려 작품을 만들고 있는 선배도 있다. 아직 사회로 나가려면 1년이나 남았다는 안도감, 결국 우리나라 사회의 나이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편함이 내 안에 공존한다.



며칠 전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봤다. 이 작품은 부모와 당시 교육 체제에 의해 억압받던 윌튼 아카데미 학생들 앞에 키팅 선생님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변화의 과정을 담아냈다. 학생들은 처음에 정규 수업 과정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을 보여주는 키팅 선생님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주인공인 앤더슨을 비롯한 몇몇의 학생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에게 자유와 철학을 가르쳐 준 키팅 선생님을 따르게 된다.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사실 그리 엄청난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나 며칠 전 다시 봤을 때는 왠지 모를 눈물까지 흐르는 게 아니겠는가. 어쩌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카르페디엠을 외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내심 부러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문득 청소년에게 획일화된 방식을 강요하는 사회가 묘하게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당당히 책상을 밟고 올라가 카르페디엠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인가?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이 정녕 큰 욕심인 걸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납득하다가도 어느새 비집고 들어온 반항심이 고개를 젓는다. 주변 이들의 말에 휩쓸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 나는 처음부터 예술을 전공으로 택하지도, 프리랜서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좋아하는 걸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존재하는, 더 폭 넓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보다 아주 조금은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내 마음대로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은 고작 나의 작은 넋두리에 그치겠지만,

언젠가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감받는 글이 되길 바라며.


#죽은시인의사회 #죽시사 #영화 #좋아하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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