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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18

결혼 전엔 몰랐던 것들

by 장정윤

결혼 전 나이만 먹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었던 나를 반성하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1. 양말 때문에 싸울 줄 몰랐다


결혼하면 치약 때문에 싸우네, 양말 때문에 싸우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솔직히 너무 유치하단 생각이 들어 그들의 수준을 의심했다. 양말 까짓것 어디다 벗어두면 거슬리는 사람이 주워서 빨래통에 넣으면 되고 뒤집어 놓으면 그냥 그대로 빨아 옷장 속에 넣어두면 자기가 신을 땐 알아서 뒤집겠지 왜 그런 걸로 싸우나 싶었다.


우리 집에서 빨래는 내 담당이다. 나는 흰옷, 검은 옷, 속옷, 수건 등을 다 분리해서 빠는 걸 선호하고 옷은 건조기에 넣지 않고 자연 건조하는 걸 좋아한다. 한 번은 내가 일을 나갔을 때 승현이 나서서 빨래를 해 놓았는데 온갖 빨래를 한 번에 빨았고 다 같이 건조기에 돌렸다. 옷이 반은 줄어들었다. 이후로 빨래는 내 스타일대로 하려고 내가 한다.


신혼 초, 빨래를 하려고 보니 승현의 양말이 죄다 돌돌 말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양말 두 짝을 포개 돌돌 말아 빨래통에 넣어 둔 것이다. 처음엔 그 엉뚱함이 귀엽고 웃겼다. 나는 그 양말들을 다 풀어서 빤 뒤 짝을 맞춰 개어 옷장에 넣어주었다. 승현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양말 두 짝을 겹쳐 돌돌 말아 빨래통에 넣었다. 아니, 벗은 다음 그냥 그대로 넣으면 될 걸 왜 수고스럽게 돌돌 말아 넣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양말 때문에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차라리 그때 말을 했어야 했다.


수많은 날이 지나고 어느 날,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려 한껏 예민해졌을 때였다. 할 일은 많은데 넘치는 빨래가 맘에 걸렸다. 꼭 할 일이 많을 때 밀린 집안일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심란한 마음으로 빨래를 하려고 보니 또 승현의 양말이 돌돌 말려져 있었다. 그렇다... 내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나는 돌돌 말린 양말을 들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승현에게 소리쳤다.


- 도대체 왜 양말을 이렇게 돌돌 말아서 빨래통에 넣어? 그럼 나보고 이걸 다 풀라는 거야? 빨래하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승현의 큰 눈이 꿈뻑꿈뻑 느리게 움직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더니 혼자 살 때 양말이 자꾸 한 짝씩 없어져서 자기는 그렇게 짝을 맞춰 돌돌 말아서 빨았다는 희한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속으로 소리 질렀다. '그렇게 빨면 빨리니!!!!????' 나는 그냥 한숨을 크게 쉬고는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날의 공기는 무거웠다. 나는 나에게 실망하고 자존감마저 떨어졌다. 결국 양말 때문에 소리 지르고 말았어...


가끔씩 승현이 나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라고 완벽할까? 나는 옷을 갈아입고 잠옷을 바닥에 던져둔 채 까먹고 그냥 외출을 한 적이 많다. 승현은 항상 그 잠옷을 잘 개켜 서랍장 위에 올려두면서도 나에게 한마디도 뭐라 한 적이 없다. 한 번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밀리다 밀리다 서랍 밑으로 들어간 속옷을 로봇청소기가 먹은 적도 있다. 로봇청소기에서 속옷을 빼내면서 내가 민망해하자 잔소리는커녕 사람이 정신없이 바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웃고 넘어가 준다. 내가 저녁 먹고 설거지도 못하고 잠이 들면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와 피곤할 텐데도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해 놓는다. 내가 그런 사람에게 양말 따위 가지고 소리를 질렀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나를 반성한다.


2. 우리 오빠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승현은 술을 먹으러 나가선 연락도 안되고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맥주를 사러 편의점으로 가던 길, 가로수 밑에 서서 비틀거리며 자고 있던 승현을 발견했다. 승현은 술만 마시면 잠드는 게 특기인 사람이다. 본인은 술을 좀 깨고 들어가려고 거기서 그러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화가 단단히 났다. 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고자질을 했다. 어머니는 그놈이 미친놈이라며 같이 욕해주셨다. 그러고도 난 며칠 동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도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걸로 뭐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술에 취해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위험한 일에 휘말릴까 걱정됐다.


문득, 새언니가 생각났다. 우리 오빠도 (사실은 우리 집안 자체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로 가끔 새언니 속을 상하게 했었다. 언니가 다 말하지 않기에 모르겠지만 한 예로, 오빠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는데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택시 아저씨가 깨워봤지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언니에게 전화를 해왔다. 언니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나에게 SOS를 청했다. 190cm 거구인 오빠를 언니랑 같이 택시에서 끌어내 부축해서 집에 데리고 가 눕혔다. 그러고도 난 내 오빠이기 때문에 짜증이 나거나 밉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일이 대수롭지 않았기에 새언니 표정이나 마음을 헤아릴 생각도 못했다. 결혼하고 나니 그 일이 얼마나 혈압 오르는 일인지 비로소 알게 되어 뒤늦게 새언니에게 미안해졌다.


또 몇 번은 새언니가 오빠 때문에 속상하다며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하는 걸 옆에서 들었다. 들어보면 별 일도 아닌데 왜 시어머니한테까지 전화를 하나 싶었다. 나도 시자 들어가는 시누이었나 보다. 나는 승현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웬만하면 속으로 삭혀보지만 이러다간 돌겠다 싶을 때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한다. 유일하게 내 남편을 욕해도 흠잡지 않는 게 시어머니였다. 같이 욕은 하지만 승현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선 나에겐 동지였다. 내 전화로 시어머니는 조금 심란해지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가서 남편 욕을 한단 말인가. 아, 새언니가 이래서 그랬구나. 뒤늦게 또 미안해졌다. 결혼 전이라 '오빠'에 대해선 알아도 '남편'에 대한 마음이 어떤 건지 몰랐다.


3. 남편은 의외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내 말이 너의 말이고, 너의 말이 내 말일 줄 알았다. 살면서 이렇게 말 잘 통하는 남자는 승현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결혼과 동시에 입을 닫아버렸다. 조잘조잘 잘도 떠들다가 중요한 얘기에선 정작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아니, 별 일도 아닌 것에 입을 다물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승현의 턱 부분에 상처가 크게 난 걸 발견했다. 나는 왜 다쳤는지 며칠에 걸쳐 물어봤다. 연애 때도 한 번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기에 왜 다쳤는지 물어봤는데 대답을 하지 않더니 며칠 뒤 새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그제야 오토바이 사고가 나 다쳤던 거란 걸 얘기했다. 아무튼 턱에 난 상처의 이유가 뭐 때문인지 말을 해주지 않으니 나는 온갖 상상을 했다. 넘어졌나? 누구랑 싸웠나? 시어머니도 상처를 보고 왜 다쳤냐 물어보았지만 승현은 수줍은 미소만 날렸다. 왜 수줍은 건데...? 사건의 전말은 의외의 상황에서 밝혀졌다. 승현과 산책을 하고 있는데 승현의 키가 크다 보니 가로수 나뭇가지들이 그의 머리에 걸렸다. 키가 커서 불편하겠다고 내가 말하자 승현이 말했다.


- 그래서 내가 나뭇가지에 긁혀서 턱 다친 거잖아~


응? 그랬던 거였구나. 근데 내가 그토록 물을 때 왜 얘기 안 한 건데? 나는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대꾸도 안 했다.


또 한 번은 승현과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승현이 화장실을 가 한참을 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 뒤 나온 승현의 상의 절반이 물에 젖어 있었다. 나는 물었다, 옷이 왜 젖은 거냐고. 그랬더니 승현은 그냥 세수를 했다고 말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세수를 하는데 옷 반이 젖어? 의문스러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 사건의 전말도 의외의 상황에서 밝혀졌다.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이마에 축축한 게 떨어졌다. 물방울인가 손으로 이마를 닦았는데 새똥이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자 승현은 편의점에 뛰어가 물티슈를 사 왔다. 걷다가 새똥 맞은 건 내가 유일할 거라고 말하자 승현이 입을 열었다. 그날 그때, 자기도 새똥을 맞아서 옷을 빠느라 상의 반이 젖었었다는 걸. 나는 많이 놀랬다. 부부가 번갈아가며 길을 걷다 새똥을 맞은 것도 놀랍지만 그가 별 것도 아닌 걸로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이 얘기를 몇 명의 남자 지인들에게 말해봤는데 승현이 특이한 부분에서 입을 다문다는 건 맞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이들이 남편과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닌 것이다.


엉뚱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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